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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그와 소년들이 가족이 되어가는 과정 <황시>
안현진(LA 통신원) 2008-09-17

감동 지수 ★★☆ 로맨스 지수 ★★☆ 조너선 리스 메이어스의 외국어 구사 능력 지수 ★★★★

일본의 침략에 국민당과 공산당의 대립으로 혼돈에 놓였던 1938년의 중국, 외국인 기자로 상하이에 머물던 영국인 조지 호그(조너선 리스 메이어스)는 전쟁이 끝난 뒤에도 고국으로 영원히 돌아오지 못했다. 중국식으로 ‘허커’라고 불렸던 그의 이름은 비석에 새겨져 중국 땅에 세워졌는데, 그 이야기를 담은 영화가 <황시>다. 난징 대학살 뒤 일본은 철저하게 언론을 통제했고, 23살의 의욕 넘치던 호그는 적십자 약품 운송원으로 위장해 난징에 잠입한다. 모두 죽이고 모두 태우고 모두 빼앗는, 이른바 삼광정책의 현장을 목격한 그는 일본군에 발각돼 처형당할 위기에 놓였다가 공산당원 잭(주윤발)의 도움으로 목숨을 구하고, 잭은 사경을 헤매다 살아난 호그를 황시라는 작은 마을로 데려가 전쟁 고아들을 돌보고 상처도 치료하도록 한다. 펜을 무기 삼아 일제와 싸우려던 청년은 졸지에 고아들의 보모가 되지만, 언어의 장벽을 뛰어넘은 인간애는 그들을 한 가족으로 만든다. 국민당이 소년들을 징병하려고 하자 호그는 황시에서 1126km나 떨어진 샨단으로 이동할 계획을 세우는데, 호그 일행은 초반 900km를 걸어서 이동했고 란저우에서부터는 트럭을 빌려 타고 갔다.

<LA타임스>를 통해 세상에 알려진 호그의 이야기가 영화로 만들어지는 데는 20년이 넘는 시간이 걸렸다. 1985년 술집에서 귀동냥으로 들은 이야기를 기사화한 <데일리 텔레그래프>의 베이징 통신원 제임스 맥마누스는 영화의 각본에도 참여했는데, 2007년 <타임스>에 기고한 글에 의하면 영화는 호그에게 초점을 맞추고 많은 이야기를 생략했다. 호그의 삶이 조명받은 이유는 샨단으로 향했던 ‘작은 대장정’ 때문이지만, 영화는 설산을 지난 고단한 발걸음보다는 호그와 소년들이 야만에서 문명을 세우고 가족이 되어간 과정에 주목한다. 그리고 전쟁을 다룬 휴먼드라마가 그러하듯 총포와 군화가 남긴 상흔에 대해 호소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소년들을 끌어안는 메이어스의 연기는 진실되며, 아역배우들의 검은 눈동자는 그에 호응한다. <연인> <황후花>의 촬영감독 자오샤오딩이 담아낸 야간이동 장면은 그림자극처럼 아름답고, 학살장면에서 스크린이 멈출 때는 숨이 멎을 것 같다. 하지만 뜨거운 가슴을 가졌던 벽안의 성자를 기억하는, 이제는 노인이 된 생존 고아들의 회상이 채우는 결말은 너무 착하다. 어떤 이가 기억되려면 그를 기억해주는 사람들이 있기 때문이라는 과도한 배려가 실화가 지녔던 울림을 반감시켰다.

Tip/ 영화가 생략한 이야기 중에는 뉴질랜드에서 태어난 작가이자 교육가인 르위 앨리의 삶이 있다. 앨리는 조지 호그와 함께 샨단에서 아이들을 돌보았으며, 제임스 맥마누스에게 자세한 이야기를 들려준 주인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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