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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작을 완전히 카피”한 영화 <20세기 소년>
박성렬 2008-09-10

추억공감 지수 ★★ 70년대는 죽지 않았어 지수 ★★★ 만화와의 싱크로율 지수 ★★★★

제목과 달리 <20세기 소년>의 주인공은 이제 막 청년에서 아저씨가 되려는 판국이다. 펑퍼짐한 점퍼에 꼬질꼬질한 운동화, 배에는 살이 얹혔고 이마 위엔 몇 갈래의 협곡까지 파였다. 그러나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면 아저씨는 머리를 노랗게 물들이고 무대에 섰던 20대의 로커였고, 그보다 좀더 거슬러 올라가면 마당에 비밀기지를 짓고 지구방위군 놀이를 하던 코찔찔이 소년이었다. 이 주인공이 기타를 쥐고 물렁물렁해진 손으로 다시금 T-Rex가 부른 <20th Century Boy>의 리프를 연주하는 순간 눈동자에 소년 시절의 패기가 언뜻 아른거린다. 외모가 그대를 속일지라도 아저씨는 영원한 소년이다.

영화의 시작점은 세기말의 1997년이다. 소년 시절에 꿈만 컸던 아저씨들은 퍽퍽한 현실을 통감하며 고개를 조아리고 살아간다. 어릴 적부터 품어왔던 록스타의 꿈을 접은 켄지(가라사와 도시아키)는 편의점을 운영하며 기계처럼 살아가고 있다. 켄지의 친구들 역시 사정은 다를 바 없어 사다키요(가가와 데루유키)는 복사기의 세일즈맨을 하고 마루오(나가세 가쓰히사)는 동네에 조그만 문방구를 열어 근근이 살아가는 형편이다. 동창회에서 잔을 맞댄 켄지와 친구들은 ‘친구’를 교주로 하는 신흥 종교가 자신들이 어릴 적에 만들어낸 이야기를 바탕으로 세계 멸망을 기도하고 있다는 사실을 뒤늦게 알아차린다. ‘친구’의 종교는 켄지의 친구를 살해하고 정치에도 손을 뻗는데 켄지와 친구들은 기억을 더듬고 뿔뿔이 흩어져 있던 동창들을 모아 음모에 맞서면서 21세기를 맞는다.

원작을 열독한 팬이라면 이미 줄줄 외고 있을 내용이다. 만화책으로 5권까지의 분량을 그대로 답습하기 때문이다. 감독이 밝힌 대로 “기본적으로 만화의 컷을 그대로 따와 작업”하고 “원작을 완전히 카피”한 영화답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새롭게 느껴지는 것이 있다면 만화에서는 언급만 되던 롤링 스톤스나 밥 딜런의 음악을 직접 들을 수 있다는 점과 쓰쓰미 유키히코 감독 특유의 풍미이다. 속도감있는 편집과 짧은 컷신 사이사이의 만담들은 쓰쓰미 유키히코의 전작 TV드라마와 뮤직비디오를 극장에서 보는듯한 착각마저 일으킨다.

원작에 대한 존경으로 완성한 <20세기 소년>은 원작의 고약한 단점들마저 그대로 등에 업고 간다. 존재이유가 불분명한 캐릭터들은 여전히 그 자리를 지키면서 러닝타임을 낭비하고, 만화 특유의 유치한 감수성은 대사 곳곳에서 민망함을 선사한다. 원작에 충실하고자 덧칠된 컴퓨터그래픽도 이질감만 드러내는 사족이다. 쓰쓰미 유키히코의 지나친 경외심 탓일 수도 있겠지만 그보다는 ‘만화로서’의 원작이 너무나 뛰어났기 때문이다. 종종 영화 같은 만화라는 평을 들었던 우라사와 원작의 영예를 훼손하지 않고 스크린에 옮기는 일은 삼부작으로 기획된 <20세기 소년>의 속편과 우라사와의 또 다른 작품인 <몬스터>의 영화화가 해결해야 할 숙제다.

Tip/크레딧 롤과 함께 들려오는 ‘켄지의 노래’는 원작 만화가인 우라사와 나오키가 직접 작곡해서 부른 노래란다. 만화가에 영화 각본, 그리고 작곡까지 겸하는 대단한 재주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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