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라인 VOD 서비스가 죽어가는 부가판권 시장을 회생시키는 데 도움을 줄 것인가. 3개월 전만 해도 이 질문에 대한 답은 ‘글쎄’였다. 하지만 현재 업계 관계자들의 답은 ‘확실히 도움은 된다’쪽으로 바뀌었다. 아무리 보수적으로 이야기하는 사람이라 해도 ‘잠재력과 가능성은 확인했다’고 답한다. 불법 파일 다운로드의 온상으로만 간주됐던 온라인 공간이 불과 3개월 만에 새로운 영화 부가판권 시장으로 자리를 잡게 된 것이다. 그 3개월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나.
지금으로부터 3개월 전인 6월20일에는 온라인 VOD 시장의 가능성을 확인하게 해주는 일이 벌어졌다. 전국 500만 관객을 동원한 <추격자>가 DVD와 비디오 발매에 앞서 온라인에서 유료 다운로드 서비스를 시작한 것이다. <추격자>는 한 사이트에서 하루 1500건이 다운로드되는 등 서비스 초반부터 화제를 모은데 이어 최근까지 5억원의 매출을 기록할 정도로 대단한 성공을 거뒀다. <추격자>의 투자사 벤티지 홀딩스의 정석영 실장에 따르면 이는 “DVD, 비디오 매출을 넘어서는 것”이다. <추격자>를 비롯해 영화 온라인 다운로드 서비스를 제공하는 씨네21i는 3개월이 채 안 되는 서비스 기간 동안 유료 다운로드 이용이 30만건을 넘어섰다고 밝힌다. 하루 평균 5천건 가까운 다운로드가 이뤄지고 있으며, 월 매출 또한 5억원가량에 이르고 있다. 씨네21i의 경우 <페넬로피> <말할 수 없는 비밀> <살결> 등 300여편의 한국영화와 외화가 꾸준하게 다운로드되는 중이다. KT 계열사인 KTH 또한 올림픽 기간 중 <우리 생애 최고의 순간>이 인기를 끄는 등 씨네21i와 비슷한 매출을 기록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또 다른 온라인 서비스업체인 콘텐츠 로드 또한 시장에서 좋은 반응을 얻고 있다.
사용자가 많은 웹하드를 중심으로 한 전략이 주효
최근 서비스되고 있는 온라인 다운로드의 특징은 웹하드를 이용한다는 점이다. 불법 다운로드의 천국으로만 인식되던 웹하드를 합법 유료화 서비스의 공간으로 바꿔낸 첫 주자는 콘텐츠 로드다. 물론 웹하드를 통한 합법 다운로드의 시장성을 확인시켜준 건 씨네21i의 <추격자>였다. 웹하드에서 영화를 거의 무료에 가까운 가격으로 다운로드받던 이용자들은 <추격자>라는 강력한 인지도와 선호도를 가진 콘텐츠에 2천원이라는 이용료를 기꺼이 지불한 것이다. <추격자> 이후 여러 영화 파일들이 ‘합법 콘텐츠’ 또는 ‘제휴 콘텐츠’로 지정되면서 유료 서비스로 전환됐고 소비자들 또한 이제 유료화라는 추세에 서서히 적응하는 분위기다. 유료 다운로드 서비스가 웹하드를 거점으로 삼은 데 대해 씨네21i의 김준범 이사는 “웹하드가 불법 다운로드의 온상인 것은 맞지만, 많은 소비자들이 이곳을 이용한다는 점을 고려했을 때 이들을 양성화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생각했다”고 말한다. 실제로 영화진흥위원회가 발간한 <2007 영화소비자조사>에 따르면, 불법 무료 다운로드 사이트는 ‘다양한 영화를 볼 수 있는 매체’, ‘원하는 시간에 볼 수 있는 매체’, ‘경제적으로 이용할 수 있는 매체’ 항목에서 1위로 조사됐다. 결국 웹하드가 이미 영화 관람의 주요한 매체로 자리잡은 상황이므로 이를 인정하고 양성화하는 방향으로 나아가는 게 현실적이라는 얘기다. 이준동 영화제작가협회 부회장 또한 “극장을 제외하면 온라인 VOD 다운로드 서비스가 영화를 감상하는 가장 익숙한 방법이라는 데 주목해야 한다”면서 “이 분야는 영화산업뿐 아니라 IT산업의 새로운 돌파구를 연다는 점에서도 중요하다”고 주장한다.
물론 웹하드를 통한 다운로드 서비스는 아직 완성된 상태가 아니다. 무작위적인 업로더가 올려놓은 파일에 과금 시스템만 덧붙인 현재의 서비스는 불완전해 보이는 게 사실이다. 특히 현재의 시스템에서는 많은 판권자가 원하고 있는 DRM(Digital Rights Management, 디지털 저작권 관리. 일반적으로 콘텐츠에 보안시스템을 적용해 관리하는 것을 의미)을 적용할 수 없고, 통합적인 영상에 대한 품질 관리도 불가능하다. 때문에 업계에서는 이런 문제를 극복하기 위한 방도를 모색하고 있다. 씨네21i가 구상하고 있는 AFAS(Any File Accounting Service)는 이런 차원에서 만들어졌다. 김진욱 팀장은 “이 시스템 아래서는 이용자가 파일 다운로드를 클릭하면, 지금처럼 이용자가 올린 파일이 다운로드되는 것이 아니라 통합 파일센터로 연결돼 이곳에 준비돼 있는 영상파일이 다운로드된다”고 설명한다. 이 시스템이 구축되면 판권자가 제공하는 고품질의 영상이 다운로드될 수 있고, 파수닷컴이 담당하게 될 DRM 또한 적용할 수 있다는 얘기다. 김진욱 팀장은 “이 시스템이 완성되면 온라인 VOD 서비스 또한 IPTV처럼 ‘폐쇄형 관리’가 가능해지는 것”이라고 설명한다.
홀드백 문제를 해결한다면 대안시장으로 자리잡을 전망
온라인 VOD 서비스가 사업 영역을 넓혀나가는 데 있어서 가장 큰 걸림돌은 홀드백 조항이다. 홀드백이란 한 영화가 극장에서 상영된 뒤 부가판권시장에서 얼마만큼의 시간을 두고, 어떤 순서로 서비스되는가에 관한 조항이다. 특히 극장-비디오·DVD-케이블TV-공중파TV 순으로 공개되던 전통적인 홀드백 순서는 DMB, IPTV, 온라인 VOD 등 디지털 기반의 새로운 매체들이 생겨나면서 크게 흔들리고 있다. 또 KT의 메가TV, SK텔레콤의 하나TV 등 IPTV 업계가 콘텐츠 확보에 막대한 물량을 쏟아부으면서 홀드백 문제는 더욱 복잡해지고 있다. 한 외화 수입·배급사 관계자는 “우리 입장에서는 여러 매체의 눈치를 봐야 한다. 비디오, DVD나 케이블TV 같은 옛 매체나 IPTV나 온라인 VOD 같은 새 매체 모두를 고려하고, 각각의 매체 안에서도 이런저런 상황을 따져봐야 한다”고 혼란스러운 상황을 설명한다. IPTV쪽은 일부 판권소유자와 계약을 할 때 IPTV 프리미엄 서비스를 가장 먼저 시작한 뒤 얼마 뒤 비디오, DVD를 발매하고, 또 얼마 뒤 온라인 VOD 서비스를 하라는 식으로 조항을 넣는 것으로 알려진다. 막강한 자본력으로 홀드백에서 우위를 점하겠다는 논리다. 하지만 온라인 VOD 사업자들은 온라인이 관객에게 가장 익숙한 관람처인데다 불법파일 유통을 근절하기 위해서라도 자신들에게 홀드백에서 우위를 줘야 한다고 주장한다. 김준범 이사는 “DVD가 출시되면 불법파일이 돌기 시작하는 것은 물론이고, IPTV의 프리미엄 서비스까지 캡처돼 불법파일화되는 상황을 고려해야 한다”고 말한다.
물론 온라인 VOD 서비스가 안고 있는 문제는 적지 않다. 이용자들은 여전히 유료(최신영화 2천원, 일반 영화는 500원~1천원) 서비스에 대한 저항감이 강하고, 메이저급 판권자들은 웹하드에 대해 여전히 불신감을 품고 있다. 게다가 웹하드에는 ‘유료인 줄 모르고 클릭했다’는 이용자들의 불평 섞인 댓글 또한 종종 올라오고 있다. 하지만 3개월이라는 짧은 기간에 온라인 VOD가 이뤄낸 성과는 무시할 수 없다. 무엇보다 가장 큰 것은 웹하드를 주된 공간으로 활용해 불법 파일 다운로드를 막는 동시에 판권자에게 수익을 올렸다는 사실이다. 결국 이 사업이 현재의 추세를 유지한다면 이용자들의 저항감과 판권자들의 거부감 또한 서서히 사라져 온라인 공간은 영화의 대안적인 시장으로 자리잡게 될 것으로 보인다.
“온라인 VOD 서비스가 가진 잠재력에 고무됐다”
벤티지 홀딩스 정석영 실장 인터뷰
-<추격자>의 온라인 VOD 서비스 실적이 좋다. =일단 온라인에서 이만한 수익을 올린 게 처음이라서 잠재력을 많이 느낀다. 웹하드를 양성화했을 때 이 정도의 성과를 낼 수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추격자>는 비디오, DVD보다 앞서 온라인 VOD 서비스를 했다. 앞으로도 부가판권 문제를 이런 식으로 풀 생각인가. =다른 매체와의 관계는 조금 더 생각해봐야겠다. 미디어 환경이 수시로 바뀌어나가는 상황이라 온라인 VOD 서비스만 밀어줄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추격자>의 경우 온라인쪽의 가능성을 타진해보고자 하는 차원이었던 것이지 앞으로의 방향을 정해놓은 것은 없다. 다른 매체의 가능성 또한 타진해봐야겠다는 생각이다. 지금은 최종 정산을 해보면 부가판권 매출 비중이 15~20% 정도에 불과하고, 15%에 못 미치는 경우도 있는데 어떤 방식으로든 이 비중을 높여야 한다.
-<추격자> 같은 콘텐츠를 검증되지 않은 온라인 VOD 시장에서 먼저 유통시킨다는 결정은 쉽게 내릴 수 없었을 것 같은데. =<추격자> 정도로 강한 콘텐츠가 아니면 시장의 가능성을 파악하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어중간하게 흥행됐고 어중간한 반응을 받은 영화로는 오히려 시장 자체의 성격을 파악하기 어렵다. 잘 알려진 영화를 내세워야 이용자들도 ‘이런 서비스도 하는구나’ 하면서 관심을 갖게 되는 것 같다.
-웹하드를 이용한 서비스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나. =아직 우리가 생각했던 것만큼 서비스를 해주지는 못하고 있다. 일단 영화파일을 다운로드 받으면 그 당사자만 볼 수 있어야 하는데, 현재 시스템에서는 다른 이용자에게 보낼 수도 있다. 과금에 대한 정의 또한 업체마다 다른 것 같다. 시스템 초기이다 보니 보완해야 할 점이 많다. 웹하드를 양성화하는 문제에 관해서는 찬성이다. 거기에서 수익이 돌아와야 콘텐츠에 대한 재투자도 이뤄질 것 아닌가. 악순화의 고리였던 웹하드 다운로드가 선순환의 고리를 만들어내는 계기가 됐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