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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영화박물관 전시품 기증 릴레이 53] <성웅 이순신> 진해통영 지방촬영 일정표

<씨네21>은 한국영상자료원과 함께 5월9일 문을 연 한국영화박물관을 위한 영화인들의 적극적인 협조를 요청하며 전시품 기증 캠페인을 벌입니다. 53번째는 김충남이 기증한 <성웅 이순신>(1962)의 진해통영 지방촬영 일정표입니다.

1960년대는 넓어진 컬러 시네마스코프 화면에 화려함과 스펙터클을 보여주는 사극영화가 관객의 사랑을 받았던 시기이다. 1961년 새해 벽두부터 큰 화제가 되었던 <성춘향>(신상옥)과 <춘향전>(홍성기)의 대결이 사극 붐의 시작을 알렸다. 60년대의 사극영화 중 <춘향전>류의 멜로드라마, 권력암투를 다룬 궁중사극, 전통적인 오락사극으로 픽션의 성격이 가장 강한 액션물에 비하면 영웅전기인 <성웅 이순신>은 좀더 정확한 고증이 요구됐다. 더불어 해전장면의 스펙터클이 중요했다.

<성웅 이순신>은 1959년 10월 경복궁 근정전 오픈세트 촬영을 시작으로 11월에 한산섬과 통영 등의 주요 해전장면 현지 촬영에 들어갔다. 유현목 감독이 메가폰을 잡았고 촬영 김학성, 조명 김성춘, 미술 김정항, 장치 이봉선, 음악 김동진 등의 베테랑 스탭과 고증위원, 공보부, 국방부, 충무공 기념사업회의 후원을 받아 총제작비 4억원, 기성 영화인 200여명, 수군 엑스트라 1만명과 수백척의 선박이 동원된 대작 사극이자 초유의 해전영화였다. 1961년 자금 사정으로 제작 1/3단계에서 중단되자 이례적으로 영화금고 지원의 첫 케이스로 3천만환을 대부받고 국립영화제작소의 기재 일체를 무상으로 지원받아 완성되었다. 충무공 역에는 44살의 토건회사 사장이던 김승길이 200명의 경쟁자를 물리치고 신인으로 데뷔했다. 이를 두고 1959년 제작사인 세연영화사가 “<성웅 이순신>의 역할은 때묻지 않은 신인으로 캐스팅”했다고 홍보했는데 자유당 정권을 등에 업고 영화인들을 위협하며 <독립영화협회와 청년 리승만>(신상옥)을 준비하던 임화수가 “우린 김진규로 했는데 때가 묻었다는 거냐”며 배우들을 모아놓고 <성웅 이순신> 출연 거부를 종용했다고 한다. 3년간의 제작기간 동안 해풍이 몰아치는 진해 바닷가에서 엄동설한을 이겨낸 유현목 감독이 “다시는 영화하고 싶은 마음이 나지 않았다”라고 술회할 정도로 힘든 작업이었다. 1962년 4월 국도극장에서 개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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