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경묵/ 영화감독
또래 아이들이 학교에 가 있을 동안 도대체 할 일이 없던 난 시간이 잘 굴러간다는 이유만으로 시네마테크 부산을 은신처 삼아 닥치는 대로 영화를 보았다. 그곳에서 하루 종일 영화를 본 뒤 컵라면을 먹고 뒤뜰의 해안을 산책하다 집으로 돌아오는 게 하루 일과였다. 서울에 온 뒤에도 아르바이트하는 것 외 대부분의 시간을 서울아트시네마를 찾아가 영화를 보는 것이 당시 유일한 삶의 휴식이자 낙이었다. 언제 어느 때든 가슴 벅찬 영화가 있고 반가운 친구들이 있는 곳. 이제 시네마테크 없는 서울과 부산은 상상이 불가능한 만큼 그곳은 내게 일상의 공기와 같은 존재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