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혁상(28)은 웃음이 잘 어울리는 사람이다. 거절할 때나 승낙할 때나 웃음이 먼저다. 그의 말마따나 호텔 지배인이나 식당 주인을 했어도 썩 잘 어울릴 얼굴이다. 정작 본인은 그런 성미 덕분에 일거리를 등에 짊어지고 산다고 엄살이지만, 상대는 그의 웃음 덕분에 참 편안하다. 그가 영화제를 지킨 게 올해로 삼년째. 들고 나는 스탭이 많은 영화제 현장에서 3년차면 중견 아니 노장급이다. 4회와 5회 영화제에서 그는 홍보팀 사람이었다. 기자와 게스트 사이를 오가며 인터뷰 스케줄을 잡는 것이 그의 일. 그런 그가 돌연 홍보팀을 그만둔다고 했을 땐 기자들한테 너무 시달린 탓이라 여겨져 얼마간의 죄책감마저 들기도 했다.
하지만 그의 피신처는 다시 영화제 사무국이었다. 한때 인터넷 벤처회사에서 웹PD로 활약할 정도로 유능한 웹 디자이너이기도 한 그가 부산영화제 공식 홈페이지(www.piff.org)를 책임지고 나선 것. 그래서일까. 지난해와 비교하면, 디자인과 내용면에서 모두 괄목할 만큼 알차졌다. 특히 부산 전역은 물론이고 전국의 도로상황이 지원되는 지도 서비스와 한층 강화된 보안 서비스는 그의 꼼꼼함이 그대로 드러나는 대목. 지난해 영화제를 찾았던 국내외 인기 게스트들의 사진을 상단 탭마다 띄워 한껏 축제 분위기를 살린 것도 눈길을 끈다.
그의 손때가 갈피마다 안 간 곳이 없지만, 그가 가장 심혈을 기울인 곳은 신설된 사이버PIFF 코너(www.ciberpiff.org)다. 지난 10월8일 문을 연 뒤, PPP(Pusan Promotion Plan)를 제외한 나머지 모든 오프라인상의 영화제를 사이버상에서 즐길 수 있도록 꾸몄다. 남포동 거리를 3D로 재현한 ‘영화의 거리’, 한국과 타이의 전통 가옥을 연상시키는 각각의 사이버 공간 안에서 펼쳐지는 신상옥 감독 회고전과 타이영화 특별전, 영화제의 역사와 정보를 한눈에 알아볼 수 있도록 꾸민 ‘PIFF 역사관’과 홍보관 등이 코너의 주요 메뉴다. 온라인과 오프라인 모두에서 영화제가 개최되는 셈이다. 아깝게 부산을 놓친 관객이나 벌써부터 내년이 기다려지는 성마른 영화팬들을 위해 사이버 영화제는 언제나 ‘개최중’일 예정이라고.
그는 얼마 전 3년간 준비해왔던 중앙대 영화과 대학원에 입학했다. 생각지도 못한 합격의 기쁨을 안은 것도 잠시, 이제 그는 교단에 설 꿈을 착실히 준비하고 있다. 예전엔 영화가 좋아 무작정 감독이 되려고 했지만, 지금 그에겐 선생님 소리가 더 반갑다. 안양외고 진짜 선생님인 의형(儀兄)의 도움으로 고등학교 교단에 선 것이 결심을 굳힌 결정적 계기가 됐다. 그렇다고 감독의 꿈을 포기할 생각은 아니다. “영화로 얘기하고 싶어질 때”를 위해 유보해 둔 것일 뿐. 언젠가 그가 교단에 섰을 때, 그리고 바라마지 않던 자신의 영화를 만들었을 때, 그를 만날 날이 아직도 두번이나 더 남았다.
심지현 simssisi@dreamx.net·사진 손홍주 lightson@hani.co.kr
프로필
1974년생
중앙대 무역학과 93학번
부산영화제 4회, 5회 홍보팀 스탭으로 활동
부산영화제 6회 인터넷부서 팀장으로 활동
현재 중앙대 대학원 영화과 01학번으로 재학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