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에 살 빼려고 했는데 시작도 하기 전에 여름이 지나버렸다. 될대로 되라 심정으로 밤마다 술을 마셨다. 원래 입춘부터 입추까지가 살 빼기 적기라는데. 으흐흑. 정신 차리고 이제라도 그만 망가져야겠다. 위기다. 날이 선선해지면 몸이 체지방을 비축하려들어 가만있어도 살찌기 쉽다잖아.
요 며칠 취해 지내면서, 이른바 ‘9월 위기설’도 흘려들었다. 사실 위기설은 촛불정국 때 대통령이 꺼낸 얘기라 별로 믿고 싶지 않았다. 환율급등, 주가급락, 외국인 매도세 급증 등등 급한 단어들이 연일 쏟아져 나오고 정부는 급하게 경기 부양책들을 내놓는다. 뭔가 진짜 급하긴 급한 모양이다. 사람이 급할 때는 가장 익숙한 것을 찾는다는데, 아니나 다를까 다시 ‘공구리 정신’이다. F/W 시즌을 건설경기 부양으로 열었다. 대통령은 재개발·재건축으로 일자리를 늘리겠다고 하고, 국토해양부 장관은 대운하 재추진 희망을 밝히며 경인운하 민간 사업자 모집 스케줄을 밝혔다. 도심 개발 규제를 풀면 집값이 다시 들썩일까봐 새도시를 확대하겠다고 한 게 엊그제 아닌가. 반년 만에, 성장만이 살 길이다->아니다, 물가부터 잡겠다->아무래도 삽질로 다시 성장해야겠다, 오락가락이다. 대체 이게 뭥미.
중산층과 서민의 세부담을 줄여 투자·소비를 활성화하겠다고 내놓은 감세정책도 앞뒤가 안 맞는다. 소득세·법인세 인하는 소득 상위 10%의 고소득자와 과표기준 상위 10%의 대기업에 대부분의 혜택이 돌아간다. 전체 노동자의 절반 이상(50.4%)은 지금도 벌이가 적어 근로소득세를 내지 않는다. 부동산 세제개편 등은 대놓고 고가주택과 고액자산 소유자들을 위한다. 고가주택 양도세를 완화하면 거래가 활성화될 거라고? 종부세 부담이나 상속·증여세도 덩달아 낮췄는데 나라도 안 팔고 자식에게 물려주겠다. 경제를 살리겠다면서 상류사회 사익동맹을 위한 정책을 이렇게 노골적으로 끼워넣다니. 대체 멍청한 걸까 뻔뻔한 걸까.
부자들이 호주머니를 열어야 떡고물이 생긴다고? 언제 우리나라 부자들이 세금 무서워 호주머니 안 열었나? 시차가 걸리는 경제 활성화 정책을 계층적 시각으로 보는 건 잘못됐다고? 이쪽 끝 사람들이 세금 줄어 흐뭇해하는 사이, 저쪽 끝의 사람은 죽는다. 위기는 이런 게 위기다.
이렇게 스텝이 엉키고 말의 앞뒤가 안 맞으면서 위기설은 정치공세이자 과장이라니, 자기 바지 앞춤을 열어놓고 남에게 훈수를 두는 꼴이다. 더럽고 치사하면 오래 살기라도 해야 하는데, 이런 국면에 내가 할 수 있는 경기부양과 내수진작이라고는 먹고 마시는 것밖에 없으니. 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