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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이 진짜 액션 다큐멘터리다! <우린 액션배우다> 제작기
장영엽 사진 김진희 2008-09-02

지금 시점에서 “<우린 액션배우다> 봤어?”란 질문은 많은 뜻을 내포하고 있다. “봤다”고 대답한다면 당신은 올해 독립영화계의 최대 화제작을 미리 접한 발빠른 시네필일 것이고, “보지 않았다”고 대답한다면 당신은 올해 극장에서 경험할 수 있는 가장 재미있는 영화의 개봉을 눈앞에 두고 있는 것이다. 다큐멘터리지만 웬만한 코미디영화 못지않게 웃기고, 정신없이 웃다보면 어느새 코끝이 찡해오는 <우린 액션배우다>는 어떻게 만들어졌을까. 정병길 감독과 다섯명의 액션배우들을 만나 1년6개월의 다큐멘터리 제작과정을 직접 들었고, 이를 제작일지 형식으로 재구성해보았다. 이와 더불어 개성 넘치는 여섯 주인공의 이야기를 담았다.

2006년 겨울, 병길이 영화 촬영을 제안하다

정병길: 2006년 겨울, 다큐멘터리 <락큰롤에 있어 중요한 것 세 가지>를 찍고 나니 장편다큐멘터리에 대한 욕심이 생겼다. 문득 나의 첫 연출작 <칼날 위에 서다>와 2004년 이 작품을 함께 만들었던 서울액션스쿨 8기 동료들이 떠올랐다. 그들은 모두 무엇을 하고 있을까. 수소문하니 스턴트일을 하고 있는 친구는 단 세명뿐이었다. 세명이면 따라잡기도 수월하지 않겠는가. 드디어 때가 됐다. 밝고 명랑하지만 언제나 어둡게만 묘사되는 나의 동기들. 이들의 유쾌한 본모습을 세상에 알려야겠다고 생각했다.

곽진석: 액션스쿨 동기 병길이 형이 스턴트맨에 대한 다큐멘터리를 찍는다며 나와 성일, 귀덕을 카메라에 담겠다고 했다. 솔직히 처음에는 시큰둥했다. 현장에 가면 이리저리 뛰어다녀야 하는 처지라 도움을 줄 수 있을지 의문이었고, 어떤 영화를 만들겠다는 건지 불안하기도 했고. 그런데 형의 영화 <락큰롤에…>를 보고 생각이 바뀌었다. 영화는 유쾌하고 발랄했다. 형이 만들 영화에 대한 확신이 생겼고, 어떻게든 도와주고 싶었다. 그래서 형에게 “우리도 이 영화처럼 밝은 모습으로 찍어달라”고 부탁했다.

본격적인 영화 촬영에 들어가다

드라마 <개와 늑대의 시간> 중 신성일의 카 스턴트 장면

정병길: 12월 말, 스케줄이 불규칙한 스턴트맨을 쫓기 위해 항시 대기하는 고난의 시간이 시작됐다. 그래도 생각보다 운이 좋다. 시작하자마자 귀덕이의 도움으로 인천 항구에서 드라마 <히트>의 촬영장면을 찍을 수 있다니. 여기엔 차를 이용해 고난이도의 액션장면을 연출하는 카 스턴트 촬영이 있으니 찍을 것도 많다. 널려 있는 장애물 속으로 돌진하는 귀덕이의 자동차 액션을 재빨리 카메라에 담았다. 성일이 형에게선 <개와 늑대의 시간>의 촬영 스케줄이 잡혔다는 연락이 왔다. 앞으로도 이런 식이라면 영화가 재미있게 잘 나오겠다는 생각에 벌써부터 흐뭇해진다.

예기치 못한 일로 어려움을 겪다

정병길: 귀덕이의 카 스턴트 이후 6개월간 그럴싸한 촬영장면을 하나도 잡지 못했다. 작은 인터뷰와 액션장면을 담으며 소일하다보니 슬슬 걱정이 된다. 걱정스러운 건 또 있다. 배우들이 카메라 앞에서 좀처럼 마음을 열지 못한다. 평소엔 활발하다가도 카메라 앞에서는 존댓말을 쓰는 이들의 모습이 아쉽다. 좀더 솔직하면 좋겠는데….

곽진석: 병길이 형이 촬영할 때 좀더 자연스러운 모습을 보여달라고 부탁했다. 나도 다른 형들도 평소처럼 잘 안 되는 건 알겠는데, 너무 편하게 말했다가 파장이 커질까봐 걱정도 된다. 에라 모르겠다, 확 질러버리자. 형에게 그럼 “편하게 할 테니 편집할 때 우리도 끼워달라”고 말했다. 한편으로는 부자연스러운 모습에서 벗어나려고 노력하다보니 일부러 더 과격한 말투를 사용하게 되는 것 같다.

액션배우들, 병길의 든든한 조력자가 되다

정병길: 무작정 아무 곳에나 카메라를 들이대던 나에게 배우들은 좀더 재미있는 영화를 만들 수 있도록 도움을 아끼지 않는다. 진석이는 자기가 부상 당해 피 흘리는 장면이 담겨 있는 한 영화의 메이킹 필름을 직접 구해왔고, 귀덕이는 ‘스턴트맨은 어떤 일을 하는가’란 주제에 컨셉까지 잡아 이런 장면은 이런 설정으로 찍으면 어떻겠냐고 제안을 했다. 그뿐인가. 이들은 웃기는 장면을 연출하겠다고 스스로 제안한 성인 방송 흉내에도 부끄러움이 없다. 이들이 과연 얼마 전까지 카메라 앞에서 존댓말을 쓰던 이들이 맞는가. 새로운 작품에 들어갈 때면 자기 일인 양 촬영 스케줄을 알려오는 동기들은 나의 든든한 지원군이다.

촬영팀, 중국과 러시아를 두고 고민에 빠지다

<놈놈놈> 촬영현장에서 지중현 무술감독의 협조로 얻은 스턴트맨들의 사진

정병길: 성일이 형이 일하는 <좋은 놈, 나쁜 놈, 이상한 놈>의 촬영현장인 중국을 갈 것인가, 귀덕이의 드라마 촬영지인 러시아로 갈 것인가. 아니면 이 제작비를 고스란히 아껴 서울에서 쓸 것인가. 문철이와 진석이가 합류한다는 소식을 듣고 미련없이 <놈놈놈> 촬영현장으로 향했다. 현장이 철저하게 통제된 탓에 촬영이 힘들 거라 짐작은 했지만, 가서 삼고초려하면 받아주지 않을까 하는 희망은 있었다. 결국 이병헌의 팬에게 극진한 식사대접을 받고 그의 팬레터를 제작진에게 전해주는 걸로 우리의 중국여행은 끝이 났지만, 카메라가 있고 사람이 있었으니 맨손으로 돌아올 수는 없는 법. 2주의 ‘개고생’ 뒤 서울에 돌아온 우리의 손엔 나와 친형 정병식, 이용희 PD가 덤 앤 더머 삼형제로 등장하는 한편의 단편영화가 들려 있었다. 이거라도 남겼으니, 후회는 없다.

병길, 동료의 새로운 모습을 보다

정병길: 처음에는 성일이 형과 귀덕이, 진석이를 주축으로 영화를 찍어야겠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세진이 형에게는 큰 관심을 쏟지 않았다. 들어가기 전에 “형 분량은 적을 것”이라고 말해두기도 했고. 그런데 찍어놓고 보니 형의 에피소드가 너무 재미있어서 편집할 수가 없었다. 화려한 문신부터 셀 수 없이 많은 직업과 말 사육까지, 어느 하나 평범한 게 없다. 다른 사람들은 설정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을 테지만 실상은 관객이 비현실적으로 생각할 것을 우려해 최대한 무난한 모습을 찍은 것이다. 또 <홀리데이> 촬영 때 귀덕이의 아버지가 돌아가셨다는 얘기는 이전에도 들었지만, 귀덕이가 현장 일을 모두 다 마치고 갔다는 말은 이번 촬영을 하며 처음 들었다. 부모님에 관련된 아픈 기억도 처음 듣는 얘기고. 6개월 동안 함께 운동하고 살을 부대끼며 지내왔던 동료들이지만 다큐멘터리를 만들면서 새롭게 알게 된 점이 많다.

<놈놈놈>의 지중현 무술감독이 세상을 떠나다

권귀덕: 누구도 예상치 못한 일이었다. 죽음을 많이 겪어봤지만, 그때마다 늘 같은 생각이 든다. 사람이 죽고 나면 이렇게 허무하구나. 수십년을 살았는데 단 3일 만에 이렇게 모든 것이 끝난다는 생각을 하니, 중현이 형을 보내는 마지막 날 눈물을 참을 수가 없었다. 멋졌고, 그랬기에 더욱더 아까운 사람이다.

권문철: 누가 죽는 걸 보는 건 처음이었다. 순식간에 많은 생각이 몰려왔다. 보고 있으면 금방이라도 일어나실 것 같은 분이 세상을 떠나셨다니. 실감이 나지 않고 끝까지 이건 현실이 아니라는 희망을 버릴 수가 없다. 죽음은 허무하고, 괴롭고, 슬픈 일이다.

정병길: 선배의 장례식장. 카메라를 들어야 할지 망설여진다. 하지만 그를 기억하는 사람이 한명이라도 많아야 하기에, 나는 결국 촬영을 시작한다. 그런데 내가 담을 수 있던 장례식 장면은 고작 30분이었다. 장례식 관리인이 촬영을 불허한 것이다. 순간 비통한 마음이 들었다. 취재진들이 잔뜩 몰리는 연예인들의 장례식이었다면, 주목도가 높은 어느 유명인의 장례식이었다면 그는 우리에게 그랬던 것처럼 그때도 한사코 촬영을 반대했을까. 주목받지 못하는 스턴트맨의 죽음이 더욱 슬프게 다가왔다.

진석과 성일이 스턴트 일을 그만두다

<놈놈놈> 촬영현장에서 신성일과 스턴트 연출에 대해 상의하는 고 지중현 무술감독의 모습

신성일: 믿고 따르던 중현이 형의 죽음은 내게 몹시 괴로운 사건이었다. 안 그래도 일 때문에 지쳐서 숨 돌릴 시간이 필요했던 타이밍에 그런 일이 겹쳐버린 거다. 극단적인 상황이 닥쳐오자 나는 잡고 있던 모든 것들을 한순간에 놓아버렸다. 그만두겠다는 생각은 하고 있었지만, 예상보다 이른 시일 내에 그런 결정을 내릴 수밖에 없었다.

곽진석: 이전부터 스턴트 일을 그만두어야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스턴트는 한때 가장 나를 살아 있게 만들고 행복하게 만들어줬지만 어느 순간부터 일에 치이는 내 모습을 발견할 수 있었다. <놈놈놈> 촬영을 잠정적인 마지막 스턴트로 생각하고 있던 차였다. 그때 갑작스럽게 중현이 형이 세상을 떠났고, 형의 죽음이 내내 마음에 걸렸다. 가볍게 떠나고 싶었는데, 사람을 떠나보낸 슬픔이 채 가시기도 전에 일을 그만둔다고 하면 나 때문에 침체된 분위기가 더욱 가라앉는 건 아닐까. 그것 때문에 결국은 무거운 마음으로 동료들을 떠나야 했다.

2008년 5월, 영화가 완성되다

정병길 감독의 촬영 모습

정병길: 2008년 5월, 1년6개월의 촬영이 모두 끝났다. 남은 것은 90분짜리 테이프 30개와 지친 몸뚱아리, 열다섯 시간에서 두 시간으로 줄어버린 다큐멘터리 편집본이다. 진석이와 그의 어머니의 주옥같은 대사들과 문철이의 10년지기였던 나이트클럽 웨이터의 재미있는 에피소드 등 영화에 미처 담아내지 못한 이야기들이 아쉽다. <챔피언 마빡이>보다 훨씬 더 멋진 역할을 맡았던 동기들이지만 촬영장 사정으로 그 멋진 모습을 카메라에 담아내지 못한 것도 아쉽다. 한편으로는 부족한 제작비에 마음 졸여야 했던 시간도, 사생활 없이 항시대기해야 했던 시간도 이젠 안녕이라고 생각하니 지난 1년6개월이 아득하게만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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