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은 각각 서로 다른 문을 통해 세계에 도달하며 이 문 가운데 하나는 전적으로 소설의 몫이다.” 밀란 쿤데라는 <커튼>에서 소설에 주어진 문제의 ‘몫’을 규명한다. 삶의 산문성과 대결하는 데에 탁월한 소설의 본질과 그것이 문학사와 역사 속에서 어떻게 출렁거렸는지 돌아본다. <커튼>은 소설이 아니지만, 드라마보다 엄격한 통찰로 독자를 매료해온 쿤데라의 소설 <농담>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불멸>이 그린 포물선에서 벗어나지 않는다. 저자는 다시 한번, 예술이 역사의 꽁무니를 따라다니는 브라스밴드가 아님을 명백히 한다. 두쪽에서 네쪽 사이 분량의 아담한 에세이들은 네개의 장으로 분류됐으나, 독서의 리듬을 제어하는 것 외에 딱히 구획의 의미는 없다. 유럽 문학 지형도에 관한 균형잡힌 통찰은 저자가 중부 유럽 출신이기에 독자가 얻는 선물이다. 톨스토이와 카프카의 성취에 대한 해설은 어떤 비평가의 그것보다 명쾌하다. 그럼 왜 쿤데라는 이다지도 소설이 오해받는 일을 막기 위해 애쓸까? 체코 작가라는 이유만으로 러시아 작가들과 비교당한 소감을 그는 이렇게 회고한다. “나는 (중략) 그 이상한 고통을 늘 기억하고 있다. 전혀 다른 콘텍스트 속으로 옮겨지는 것을 나는 강제이주처럼 느꼈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