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춤추는 이 몸이 제 조국이에요.” “아름다움을 이해하지 못하는 권력은 아무것도 구할 수 없어.” 한 여자의 입에서 나온 말이 이렇게도 다르다. 시점이 다르다면 가능한 일이다. 여자가 말하는 여자는 춤을 위해서라면 기꺼이 제 한몸을 바칠 수 있는 사람이지만, 지인들의 눈에 비친 그녀는 자신의 아름다움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지독한 에고이스트다. 김선우는 조선의 천재무용가 최승희의 삶을 그린 <나는 춤이다>에서 시점의 차이로부터 발생한 빈틈을 무한한 상상력으로 채운다. 소설의 밑바탕이 되는 건 인간 최승희에 대한 사실적 기록이지만, 그녀의 주변을 맴도는 사람들과 그녀의 분신이기도 한 춤에 대한 묘사는 작가의 펜끝에서 새롭게 태어나 생명력을 얻는다. 보는 내내 뛰어난 무희가 등장하는 한편의 영화를 연상하게 되는 이유는 이 소설의 모태가 시나리오이기 때문이고, 작가의 본업이 이미지를 능숙하게 다룰 줄 알아야 하는 시인이기 때문이다. 시집 <내 몸 속에 잠든 이 누구신가>로 잘 알려진 김선우 시인은 나우필름 이준동 대표의 권유로 무용가 최승희에 대한 시나리오를 쓰다가 소설을 꿈꾸게 되었다고 말한다. ‘여성성과 육체에 대한 묘사가 뛰어난 여류시인’으로 평가받아온 만큼 첫 소설임에도 노련한 솜씨로 한 여자의 삶과 춤을 그려내는 필력이 돋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