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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신기자클럽] 로카르노, 그 화려했던 과거는 어디에

프로그램 변화, 타 영화제의 등장 등으로 명성을 잃어가는 영화제

영화제의 명성은 은이 천천히 광택을 잃어가듯 오랜 시간에 걸쳐 녹슬게 마련이다. 예전의 가치를 잃고 천천히 쇠망해가면서도 오랫동안 버틴다. 이것은 영화제에 오는 사람들의 좋았던 옛 시절에 대한 향수 때문일 수도 있고 영화제가 열리는 장소나 분위기에 대한 애정이 오래가기 때문일 수도 있다. 또는 단순히 공포- 이미 이름이 높은 영화제 하나를 무너뜨리면 신전에서 기둥을 하나 뽑듯 전체 영화제의 서킷이 무너져버릴지도 모른다는 공포- 때문인지도 모른다.

나는 이미 한동안 그 명성이 부침을 겪고 있는 로카르노영화제에서 막 돌아온 참이다. 로카르노영화제는 스위스의 이탈리아 언어권에서 매년 8월에 열린다. 지난해에는 60회를 기념해서 그 예쁜 도시의 광장에서 매일 저녁 찬란했던 역사에 대한 다큐멘터리 클립을 보여주었다. 불행히도 그 클립들은 로카르노 최고의 나날들(멋진 스타들이 방문하고 유명한 감독들이 발견되는)은 이미 지나간 과거에 속한다는 사실을 확인해주었을 뿐이다.

물론 사회도 영화도 1950년대, 60년대, 70년대 초기를 지나며 모두 바뀌었다. 로카르노는 유럽의 엘리트 영화제로 시작해서 감독들의 첫 번째, 두 번째 영화들만의 경쟁 섹션을 무기로 ‘젊은 영화’를 위한 영화제로서의 명성을 유지했다. 이런 명성은 80년대 데이비드 스트라이프가 프로그램을 담당했을 때와 1990년대 마르코 뮐러의 초기 시절을 통해 지속됐다. 그러나 뮐러가 이 경쟁 섹션을 일반 경쟁 섹션으로 바꾸고 영화제의 외양을 가능한 이상으로 키우면서, 유명 스타들과 영화들은 발을 끊었고 ‘젊은 영화’는 실험, 디지털영화 또는 하드코어, 봐주기 힘든 영화제용 영화들을 의미하게 되었다.

로카르노는 스위스 산맥들로 둘러싸인 호숫가에 자리잡은 아름다운 곳이다. 그러나 영화산업쪽에서는 그 지역 배급을 위한 게 아니면 로카르노를 중요한 상영 장소로 고려하지 않게 된 지 오래다. 프랑스와 이탈리아의 심각한 평론가들이 나타나서 심각한 글들을 쓰고, 지역 관객은 한해 중 가장 큰 행사인 영화제에 충실히 나타나 다른 비슷한 규모의 영화제에서라면 소수 관객이 볼 영화들을 본다. 그러나 로카르노에는 더이상 열광이나 흥분된 느낌이 없다. 로카르노는 가장 소중한 그 무엇을 잃어버린 것이다.

로카르노만 그런 것은 아니다. 시실리의 타오르미나는 그레코로만 스타일의 극장과 가까운 곳에 위치한 에트나 화산 덕에 60년대와 70년대에는 또 하나의 유명한 행선지였다. 지난 10년간 여러 사람이 그 영화제를 되살려보려 했지만 소용이 없었다. 스페인 북쪽의 산세바스티안은 유럽의 가장 큰 다섯 영화제 중 하나였지만 지금은 스페인 언어권과 라틴아메리카영화를 주로 선보이는 영화제로 남았다. 캐나다의 프랑스 언어권에서 열리는 몬트리올영화제는, 할리우드가 80년대는 더 작은 규모였던 토론토로 돌아서기 전까지, 그리고 미국 국경 건너에 선댄스영화제가 생기기 전까지, 북미에서 가장 명망 높은 영화제였다. 그리고 90년대 토론토영화제가 급성장하기 전에는 뉴욕영화제가 외국영화들의 북미 배급을 위한 관문 역할을 했었다. 지금 뉴욕영화제는 유명 감독들이 만든 20여편의 영화를 상영하는 작고 엄숙한 엘리트 행사다.

영화산업은 무정한 산업이다. 이미 역을 떠난 기차처럼 아무도 기다려주지 않는다. 영화제가 다시 자신을 빛나게 했던 그 무엇을 회복하는 것은 처음 그것을 얻을 때보다 몇배나 더 힘든 일이다.

번역 이서지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