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빛 속에> <노말 시티> <두 사람이다> 등의 작품으로 두터운 팬층을 확보한 순정만화가 강경옥의 신작이다. 강경옥은 황미나, 신일숙, 김혜린, 원수연 등과 함께 1980, 90년대 한국 순정만화의 르네상스를 이끈 1세대 작가로 그림체보다는 섬세한 터치로 그려내는 특유의 서정성이 돋보이는 작가. 심리묘사도 탁월해 미스터리 순정물 <두 사람이다>(1999)는 2007년 동명의 공포영화로 리메이크되기도 했다. <설희>는 그런 ‘강경옥식’ 미덕이 오랜만에 발휘된 작품으로 순정만화 팬이 아니더라도 책장을 놓지 못하게 하는 끈적한 마력이 가득한 만화다. 주인공인 설희는 출생의 비밀을 가진 채 섬에서 살다 무려 21억달러라는 거금을 상속받게 되는 행운의 아가씨다. 이야기는 상속받기 위해 뉴욕에 온 그녀를 둘러싼 주변 사람들의 시기와 질투로 시작된다. 평소에는 물정 모르는 철부지 소녀 같다가도 위기의 순간에는 서늘한 얼음같이 냉정한 그녀의 동선을 작가는 흡인력있게 그려낸다. 무엇보다 호기심을 자극하는 특유의 연출력이 빛을 발휘해 작품이 연재된 격주간지 <팝툰>에는 다음 회를 궁금해하는 독자의 문의가 쇄도하기도. 세월이 흘러 더 원숙해진 연출력에다 옛 순정만화의 향수를 느끼게 하는 스크린 톤의 유려함까지 덧칠한 <설희>는 2008년 주목해야 할 순정만화 중 대표주자임이 틀림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