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는 애 유모차에 태워 동네 주민센터 로비에 나와 석대 있는 컴퓨터 중 하나를 꿰차고 앉았다. 집보다 백배는 시원하다. 므훗. 옆자리에서 망아지 같은 꼬맹이 둘이 소리 꽥꽥 질러대며 게임하는 걸 빼면 집필 환경으로 그럴듯하다. 회사 그만두고 집과 집 주변에서 지내다 보니 새로운 경험들을 하게 된다. 당장 저 위 내 이름 뒤에 현직으로 뭘 붙일까 고민이 됐다. 교양있고 상식있는 대한민국 성인이라 자부하고 살았는데, 국방부 추천도서 목록에서 내가 제대로 읽은 책이 단 세권이라는 걸 확인하고 기분을 잡쳤다. 그 책들만 다 읽었어도 나의 ‘정신전력’이 이렇게 낮지는 않을 텐데. 이제야 목록을 골라준 국방부가 원망스럽다. 고민 끝에 나를 설명할 꼬리표를 찾았다. 왠지 독립적이고 자율적이며 책임있어 보여서 마음에 든다. 다른 권위나 배경에 기대지 않고, 특히나 읽은 책에 기대지 않고, 나도 이제부터 자체발광해야지.
멀쩡히 임기가 남은 KBS 정연주 아저씨 하나 몰아내자고 온 권력기관이 경쟁적으로 나서고 있다. 그 속도가 어지러울 정도다. 감사원은 정 사장의 ‘현저한 비위’를 찾지 못하자, 경영 부실과 인사 전횡 때문에 해임해야 한다며 적용할 법도 마땅찮은 감사 결과를 내놓고, 검찰은 KBS가 몇년 전 더 많이 낸 법인세를 다 돌려받지 않고 조정해서 일부만 돌려받은 것을 놓고(아니, 나랏돈도 굳고 좋잖아, 대체 누가 손해를 입었다는 거야?) 마치 정 사장이 중대한 범죄라도 저지른 양 출국금지시켰다. 국세청은 KBS 외주제작사 세무조사에 나서고, 방송통신위원장께서는 “누가 KBS 사장이 되느냐보다 정연주 사장이 물러나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기염을 토하신다. 요즘 있는지 없는지 모르는 교육과학기술부는 KBS 이사였던 신태섭 교수를 내쫓으라며 동의대에 압력 넣는 일만은 재빠르게 했지.
정 사장만 몰아내면 정권에 우호적인 뉴스가 계속 나오고, 그렇게 되면 떨어진 지지율이 올라갈 것이고 그래야 부와 권력을 대대손손 세습할 수 있는 대한민국 0.01% 사익동맹의 천년왕국이 건설되리라 믿는 모양이다. 정연주는 그러니까 걸림돌이자 지렛대다. 이 무리의 이런 컴플렉스는 뿌리가 깊다. 일찍이 2002년 대선도 2004년 총선도 다 방송 탓이라고 여겨왔다. 하여간 스스로 땀흘려 뭔가 이뤄본 적 없는 이들은 늘 이 모양이다. 금메달이 그냥 따지니? 한나라당 원희룡 아저씨 말대로 “합법성과 정당성을 갖춰 구성원들의 동의를 얻는” 정책을 편다면 지지율이 왜 안 올라가겠어요. 부디 지랄발광 말고 자체발광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