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무로’라고 불릴 정도로 강북 중심권에 옹기종기 모여 있던 영화사들이 강남으로 대거 이동한 것은 1990년대 말부터다. 주요 영화사들과 매니지먼트사가 강남에 자리를 잡자 다른 영화사들 또한 강남에 둥지를 틀었다. 영화계의 ‘강남시대’는 한국영화산업의 고도성장과 화려한 나날을 의미하는 듯 보였다. 하지만 그것이 거품이었다는 사실을 깨닫기까지는 10년이 채 걸리지 않았다. 이제 충무로는 강남의 거품 속을 빠져나와 서북권으로 향하고 있다. 서울 서북부 지역과 거기서 이어지는 경기도 일대로 영화사들이 움직이고 있는 것이다.
최근 들어 가장 눈에 띄는 곳은 경기도 고양시 화정이다. 지난 6월 아이필름과 마술피리가 이주한 데 이어 8월 말에서 9월 초 사이에는 나우필름이 입주할 예정이다. 또 다른 영화사도 이곳으로 이주할 계획을 세워놓았다. 이곳에는 시리우스픽쳐스(옛 마인엔터테인먼트)가 자리잡고 있다. 이곳으로 터전을 옮기는 가장 큰 이유는 비용 때문이다. 화정의 부동산 가격이 강남보다 현저히 낮은데다 이들 업체가 입주해 있는 화정아카데미타워는 고양시가 방송영상산업 진흥을 위해 장기 임대한 건물로 여러 지원을 해주기 때문에 비용절감 효과는 상당하다. 오기민 아이필름 대표는 “105평을 임대했는데, 지난달 임대료, 전기사용료, 수도요금, 관리비, 청소비, 인터넷 이용요금 등을 모두 합쳐도 104만원에 불과했다”면서 “강남과는 비교도 안 되는 수준”이라고 말한다. 이준동 나우필름 대표도 “비용이 강남의 4분의1 정도로 줄어들 것”이라고 예상한다. 영화 제작의 절반 이상이 시나리오 개발 등의 ‘외로운 작업’이라는 것을 염두에 둔다면 서울 중심권에서 떨어져 있는 게 큰 불편은 아니라고 이들은 말한다.
화정과 함께 떠오르는 곳은 서울 마포구 일대다. 이곳에는 이미 M&FC 등이 자리를 잡고 있는 가운데, 몇년 안에는 한국 최대의 투자·배급사 CJ엔터테인먼트가 상암동 DMC에 입주할 계획이다. 서울영상위원회가 서울시의 위탁을 받아 조성한 ‘영화창작 공간 디렉터스 존’도 9월 DMC 안에 문을 연다. 10여명의 감독에게 창작실과 각종 편의시설을 제공하는 이 공간에 대해 서울영상위는 “영화 개발 단계에서 들어가는 비용을 줄이는 데 기여할 것”으로 기대한다. 그리고 싸이더스FNH, MK픽처스 등 20여개 영화사와 현상소, CG회사 등 20여개 영상 관련기업이 추진 중인 파주출판단지 이전사업이 성사된다면, 서울 마포구에서 화정을 거쳐 파주까지 이어지는 ‘서북부 영화벨트’가 만들어질 전망이다. 이제 효율화라는 황금을 좇는 충무로의 ‘서(북)부 시대’가 시작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