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말 한 영화 제작자는 “한국영화가 2008년 맞이할 수 있는 최선의 시나리오와 최악의 시나리오 모두 KT와 SK텔레콤의 행보와 관련있다”고 내다봤다. 최선의 시나리오는 두 통신 공룡이 적극적인 투자를 벌이고, 이에 자극받은 기존 CJ엔터테인먼트와 쇼박스, 롯데엔터테인먼트가 맞불을 놓는다는 내용. 반면 통신기업들이 실질적 움직임을 보이지 않으면서 다른 투자사도 소극적인 태도를 취하게 된다는 것이 최악의 시나리오다. 2008년 상반기를 보낸 지금의 상황은 후자쪽에 완연히 가까워지는 듯 보인다. 올해 들어 KT가 투자 결정을 내린 작품은 <불꽃처럼 나비처럼>뿐이며, SK텔레콤은 <원스 어폰 어 타임> <고死: 피의 중간고사>만을 내놓고 있기 때문이다. 이와 함께 충무로에 떠도는 소문 또한 흉흉하기 짝이 없다. 한 회사에서는 실질적으로 영화사업을 이끌던 인물이 개입하지 않고 있다는 이야기가 흘러나오고 있고, 다른 회사는 투자 기능이 사실상 정지됐다는 말이 들린다. 한국영화산업은 정말로 최악의 시나리오에 따라 해체 위기를 맞고 있는 걸까.
두 통신업체 관계자와 이야기를 나눈 결론은 ‘일단 그 정도까지 최악은 아니’라는 것. KT의 자회사 싸이더스FNH 관계자는 “올해 1편밖에 투자를 하지 않았지만, 지난해 투자했던 5편 중 <라듸오 데이즈>와 <용의주도 미스신>이 적지 않은 손실을 기록했고 <1724 기방난동사건> <트럭> <킬 미>가 아직 개봉하지 못해 투자 여력이 일시적으로 적어진 것일 뿐”이라고 설명했다. 하반기가 되면 <타짜2>나 손재곤 감독의 신작 등 주목할 만한 프로젝트들이 본격화될 것이라고 그는 덧붙였다. SK텔레콤 관계자 또한 “아직 공식적으로 투자 계약 체결이 이뤄지지 않았을 뿐이지 8월까지 2∼3편의 라인업을 발표할 것”이라고 밝혔다. 그는 항간에 떠돌고 있는 사업 철수설에 대해서 “이미 강제규필름, 토일렛픽처스, 신씨네, 시오필름 등과 시나리오 개발 계약이 돼 있고, 최근 251억원짜리 베넥스 디지털 문화콘텐츠 투자조합에 참여하기로 한 마당에 사업 철수가 웬말이냐”며 발끈했다.
이들의 말을 종합하면 올 하반기 한국영화계는 다행히도 최악의 상황에까지 이르지는 않을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통신자본을 바라보는 충무로의 시선은 여전히 곱지 않다. 이들이 영화를 여전히 IPTV용 콘텐츠 정도로만 바라보면서 영화계의 발전을 위해 별 기여하지 않는다는 게 충무로의 관점이다. 물론, 두 업체가 적극적으로 움직여 최선의 시나리오를 만드는 데 기여한다면 이들의 닫힌 가슴도 활짝 열릴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