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노 료이치의 <제물의 야회>는 하드보일드 소설이다. 섬에 고립된 듯 고독하게 살아가는, 고장난 기계 같기도 하고 치명상을 입은 짐승과도 같은 남자들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는데, 그 중심에는 20년 가까운 세월이 흐른 옛 사건이 놓여 있다. 형사 오코우치는 두 여자가 살해당한 사건을 수사하고 있다. 그는 슬픔에 잠긴 피해자의 남편의 눈에서 흉포함을 읽는다. 피해자들에 대한 조사를 시작하기가 무섭게, 두 여자가 만난 곳인 ‘범죄 피해자 가족의 모임’에 19년 전 세상을 떠들썩하게 했던 소년범죄자가 이제 변호사가 되어 번듯하게 살아가고 있음을 알게 된다. 태도가 꺼림칙했던 피해자의 남편은 흔적을 지우고 사라진다. 형사 오코우치의 수사가 진행되는 것과 동시에 아내를 잃은 남자는 복수를 준비한다. <제물의 야회>에는 실제 있었던(한국에도 잘 알려진) 1997년 일본 고베 사건을 연상시키는 설정이 등장한다. 한 중학교 정문에서 초등학생의 절단된 머리가 발견된 이 사건의 범인은 14살 소년. 소년범이기 때문에 2~3년의 격리조치 이후에 전과 없이 평범한 삶으로 돌아가 변호사가 되었다. 이 책에서는 법에 과한 보호를 받는 삶과 법이 외면한 삶, 그리고 잔혹한 범죄라는 여러 이야기에 서스펜스를 더했다. 범인을 아는 것보다 이야기가 어떻게 맺어질지 궁금해하면서 읽게 되는 이유는 이 남자들의 삶에 해피엔딩은 불가하기 때문이다. 법이 보호하지 않는 정의는 어떻게 회복해야 하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