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어쩌다 기자가 됐을까? 영화잡지 기자인 만큼 영화에 관한 글을 읽다가 이런 글을 쓰고 싶다고 생각한 것은 분명하지만 기자라는 직업에 대한 선망도 어느 정도 있었다는 생각이 든다. 요즘 기자 지망생의 숫자가 줄었다지만 언론고시라는 말이 붙을 정도로 기자는 사회적으로 인정받는 직업이다. 언론업계 종사자끼린 3D직종이라 자조해도 일반적으론 많은 사람들이 한번쯤 해봤으면 하는 직업에 속한다. 신문이나 잡지기자가 아니라 방송사 기자 혹은 방송사 PD라면 더 그렇다. 직업선호도에서 공무원을 최고로 친다 해도 직업 안정성을 빼고 생각하면 어떠냐고 물으면 기자를 하고 싶다는 응답이 훨씬 많을 것이다. 이유는 여러 가지겠으나 상대적으로 자유롭고 자존심 지키며 살 확률이 높은 직업이라는 인식이 큰 자리를 차지한다. 수많은 할리우드영화에서 불의에 맞서 싸우는 당당한 기자들을 목격했기 때문일까? 권력이나 재력에 맞선 기자들의 무용담은 언론의 사명을 선서의 형태가 아니라 로망의 형태로 가공해 이 업계가 유지되는 동력을 만든다. 박봉에 고된 노동이 기다려도 기자가 되겠다는 이들이 줄을 서는 것은 이 사회의 정의와 윤리를 지키는 일이라는 만족감 때문일 것이다. 뇌물이나 협박이나 외압에 넘어가지 않는 꿋꿋한 모습. 기자가 되려는 젊은이 중에 그런 자신을 상상하지 않은 사람은 없을 것이다. 기자세계의 이런 로망은 의사들의 히포크라테스 선서 이상의 의미를 지닌다.
<PD수첩>이 잘못을 뉘우치지 않는다고 조·중·동이 입을 모아 성토하고 있다. 맞다. 지난 7월15일 <PD수첩>은 광우병 소에 관한 방송 내용에 관해 반성하지 않는다고 밝혔다. 몇 가지 오역이 방송 전체를 부정할 근거가 되지 못한다는 것이다. 조·중·동은 화가 나서 다시 비판기사를 썼고 방송통신위원회는 높은 수위의 제재를 결정했다. <PD수첩>의 방송 내용이 공익에 부합한 내용이었다고 생각하는 나는 이번 사태를 보며 조·중·동의 기자들이 궁금해졌다. 그들은 정말로 <PD수첩>에 대한 자신들의 비판이 옳다고 믿고 있는지. 누구라도 이번 사태가 오역이 있냐 없냐를 놓고 다투는 문제가 아님을 안다(그런 문제라면 지금처럼 중대한 뉴스가 될 리 없다). 정치적 이슈이고 언론의 자유에 관한 문제다. 비판자의 입을 틀어막으려는 편에 서서 기자나 PD의 권리와 자유를 제한하자고 주장하는 것이 지금 보수언론의 입장이다. 그게 옳다고 그쪽 동네 기자들은 진심으로 믿고 있을까? 자신이 쓴 기사가 똑같이 제재를 당하고 검찰 수사를 당해도 그렇게 말할까? 자신이 어쩌다 기자가 됐는지 다시 생각해봐도 그럴 수 있을까? 내가 보기에 <PD수첩>과 조·중·동의 입장 차이는 정치적 견해 차이에 앞서 기자가 될 것이냐, 국정홍보 직원이 될 것이냐의 문제다. 아마 기자 지망생을 모두 모아놓고 물어보면 절대다수가 <PD수첩> 같은 프로그램을 만드는 쪽에 매력을 느끼리라. 그리고 그건 <PD수첩>의 성과와 태도가 그들의 직업적 이상에 가깝기 때문일 것이다.
<PD수첩> 제재와 동시에 YTN에 낙하산 사장이 왔다. 기자들은 항의했고 울먹였다. 그 모습을 보니 마음이 아프면서도 뿌듯하다. 이래선 안 된다고 외치는 그들의 눈엔 기자의 로망이 서려 있다. 젊은 날의 이상이 빛나고 있다. 그들 역시 단순히 정부정책과 싸우는 것이 아니다. 그들은 기자의 직업윤리를 지키기 위해, 기자로서 가졌던 꿈을 위해 싸우고 있다. 언젠가 후배들이 자랑스러워할 로망이 될 그들의 싸움을 응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