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제45회 대종상 작품상은 <추격자>가 받았다. 감독상과 남우주연상 역시 <추격자>의 나홍진 감독과 배우 김윤석이 받았다. <추격자>가 개인적으로 흠모하는 상의 영화는 아니지만 시사회 때 손에 땀을 쥐고 보았던 걸 생각하면(예전에는 요르그 뷰트게라이트의 영화를 보면서 야참도 먹었는데 요즘은 날이 갈수록 무서운 장면을 못 본다), 나홍진은 실력있는 감독이며 김윤석은 늦게나마 빛을 보게 된 뛰어난 배우다. 하지만 올해도 대종상은 역시나 어딘가 이상하며 허전하다. 홍상수의 <밤과 낮>을 ‘<씨네21> 창간 13주년 기념 특집 베스트 설문’에서 1995년 이래 지금까지 나온 전세계의 모든 영화를 통털어 베스트 1위로 꼽은 나로서는 허전할 수밖에 없다. 수상 결과에 동의할 수 없다. 올해 대종상 작품상 후보는 <밀양> <세븐데이즈> <추격자> <행복> <즐거운 인생>(영화제 사이트에 올라 있는 순서)이었으며, 나는 <밀양> <행복> <추격자> <세븐데이즈> 순으로 좋아한다. 생각해보니 <즐거운 인생>은 아직 보지 못했다. <밤과 낮>은 후보에도 오르지 못했다. 유감이다.
2. 배우 유인촌은 나의 유년 시절에 영화와 관련된 아름다운 추억 하나를 심어준 사람이다. 어느 프로그램이었는지 정확히 기억이 나지 않지만 그가 텔레비전에 나와 영화 한편을 소개해주었다. 어린애가 볼 만한 프로는 아니었던 것 같은데 우연히 내가 본 모양이다. 그때 그가 소개해준 영화가 어렴풋한 기억으로는 자크 타티의 <윌로씨의 휴가>가 아니었던가 싶다(물론 내 기억이 틀릴 수도 있다. 하지만 자크 타티를 소개한 건 틀림없다). 그때 어린 마음에도 이 영화가 참 재미있겠다고 생각했고, 그걸 소개해준 멋있는 배우가 기억에 오롯이 남았다. 그 뒤로 그 영화를 보는 데에는 오랜 시간이 걸렸다. 보고 나니 즐거웠다. 자크 타티를 떠올릴 때마다 나는 유년의 추억을 떠올리듯 유인촌이라는 이름을 함께 떠올리는 것이 습관처럼 됐다. <전원일기>는 잘 보지 않았지만, 임권택 감독의 <연산일기>에서 그의 연기를 보고 더욱 좋아하게 됐다. 가련하지만 광기로 가득 찬 연산을 그는 연극세상에서 다져진 품위 넘치는 연기로 보여주었다. 그가 이명박 정부의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이 됐다. ‘좌파적출’ 발언으로 구설수에 오르더니, 얼마 전에는 촛불집회 참여자 중 일부가 조선일보와 동아일보 사옥에 오물을 투척한 것을 계기로 조선일보를 위문 방문하면서 이례적으로 장관이 한쪽 언론만 편드는 게 아니냐는 구설수에 또 오르내린다. 내가 사랑하던 배우가 내가 힘겨워하는 시대의 장관이다. 유감이다.
3. 휴가는 잘 보냈느냐고, 어딘가 다녀왔느냐고, 사람들이 묻곤 하는데, 그런 거 묻지 말아줬으면 좋겠다. 오픈칼럼을 쓰게 될 거라고 예상은 했지만, 좋은 곳에 다녀왔다고 해도 애초에 나는 그곳의 추억에 대해 쓰지 않을 작정이었다. 내가 가장 성실하게 한 건 평소와 다르게 <9시 뉴스>를 챙겨보는 일이었고, 내가 또렷이 기억하는 건 저녁 7시에 드는 햇볕이 하루 중 가장 노랗더라는 것 정도다(방금 편집장이 내 이름을 부르며 오픈칼럼을 쓰는 게 먼저라는 걸 알고 있느냐고 물었다… 전영객잔보다… 그걸 어찌 잊을까…). 이렇게 될 줄 알고는 있었지만, 휴가 뒤끝에 오픈칼럼을 쓰는 것이 어느새 <씨네21>의 전통 아닌 전통으로 자리잡았다. 유감이다.
(그 밖에도 유감이 많은 요즘이지만 되도록이면 영화(계)와 영상 담론, 그와 관련된 인물들에 대한 잡문을 쓰는 것이 내가 오픈칼럼을 쓸 때 정해둔 나름의 규칙이라 세 가지만 적었다. 지금은, 유감천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