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벽대전: 거대한 전쟁의 시작>에서 양조위는 주유로 나오지만 과거 제갈량으로 출연한 적 있다. 물론 현재와 과거를 오가는 코미디영화였다. 한국 배우 조은숙과 함께 출연한 여대위 감독의 <초시공애>(1998)에서 임무 수행 도중 부상을 당한 형사 유일로(양조위)는, 영화사 사장에게 당한 강간과 아버지의 분신자살 등의 충격으로 자살미수로 실려온 관(조은숙)을 병원에서 만나고 첫눈에 사랑에 빠진다. 오프닝에서 마치 왕가위식 독백으로 “난 사랑을 믿지 않는다”며 “애인은 처음 만나 옷을 벗고 고르는 게 낫다. 약점과 습관부터 본 다음 사귀는 게 확률상 좋다”고 ‘까칠’하게 얘기하던 그는 유체이탈을 경험하며 반라의 조은숙까지 본다. 그리고 얼마 뒤 유일로는 한 사원에서 벌어진 인질극에 투입되는데, 인질극을 벌이던 남자는 자신을 관우라고 착각하는 정신병자다. 이에 그는 유비도 장비도 아닌 제갈량 복장을 입고 연기를 하면서(사진) 네고시에이터로 투입된다. 그러나 협상 도중 지붕이 무너지면서 양조위는 제갈량이 된 채 삼국시대로 시간이동을 하고, 거기서 오나라 장수 여몽으로 있는 조은숙을 만나게 된다(여몽은 가장 인기있는 인물 관우를 처형한 장수로 이후 주로 악역으로 등장하는 경우가 많았다).
얼핏 보면 유약하고 진중한 이미지의 양조위는 제갈량과 어울려 보인다. <초시공애>에서 여대위 감독이 노렸던 부분도 그것이다. 어쩔 수 없이 흘러가는 운명에 그저 자신을 내맡기는 인물 말이다. 황태래 감독의 <마화정>(1990)에서 왕조현과 시공을 초월한 사랑을 나눈 그의 모습도 그러했다. 왕가위가 각본을 쓴 <신조협려>(1991)로 독특한 SF멜로 감성을 선보였던 여대위는 <초시공애>로 다시 한번 그 꿈을 꾸려 했으나 영화는 어정쩡한 실패로 끝나고 말았다. 양조위가 자신이 죽었다고 생각하는 간호사에게 다가가 갑작스레 키스를 하더니 “내 혀가 따뜻하지? 살아 있는 거 맞지?”라고 확인시켜주는, 그의 팬으로서 웃기도 울기도 힘든 어색한 장면을 대량 보는 것도 사실 당혹스러웠다. 그저 양조위가 제갈량을 연기했다는 것, 그리고 그와 조은숙이 한 영화에서 만났다는 사실 정도만 흥미로웠다. 어쨌건 조은숙은 유일하게 양조위와 딥키스를 나눈 한국 배우로 기록될 것이다.
수많은 ‘원작’ 중에서 양조위를 <삼국지>로 한정하지 않는다면 그의 많은 팬들은 주유는 어울리지 않아, 제갈량도 저리 가, 를 외치며 여전히 TV시리즈 <의천도룡기86>의 장무기를 떠올릴 것이다. 이연걸이 영화 <의천도룡기>를 통해 무술 잘하는 장무기를 연기했고(속편을 예고하며 끝났으나 제작사가 파산하면서 영화는 어정쩡하게 끝나버렸다), <의천도룡기86>에 이어 소유붕 등 여러 후배들이 장무기 역할을 이어받았으나 모두 양조위의 매력을 넘어서진 못했다. 유덕화의 양과, 주성치의 위소보 등과 더불어 양조위의 장무기 역시 김용 원작을 빛내준 배우다. 그래서 한편으로는 최근 몇년간 너무 양조위의 심각한 이미지만 도드라지는 건 아닌지 하는 아쉬움이 있다. 아무래도 양조위도 이제 노숙해져가고 있기 때문이겠지만, 네 미녀 사이에서 갈팡질팡하며 해맑은 웃음으로 여심을 자극하던 장무기의 이미지를 다시 보고 싶은 마음도 굴뚝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