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7월8일(화) 서울극장, <님은 먼곳에> 무대인사를 하기 위해 단상에 오른 이준익 감독은 “지난 45년 동안 편집기사를 하셨던 김희수 선생님께서 돌아가셔서 오늘 아침 상가에 다녀왔다”는 인사를 먼저 전했다. 고 김희수 선생은 <님은 먼곳에>는 물론 <텔미썸딩> <엽기적인 그녀> <올드보이> <혈의 누> <사생결단> <라디오 스타> <걸스카우트> 등 지난 20여년간 한국영화의 굵직한 주요 작품들을 편집해온 김상범, 김재범 형제 편집기사의 부친이기도 하다. 이에 이준익 감독은 “2대에 걸쳐 일하는 이런 분들 덕분에 우리 영화가 만들어졌고 한국영화가 발전해왔다”며 고인의 명복을 빌었다.
1926년 평북 정주 출생으로 신의주 신영극장에서 영사기사로 일하던 김희수씨는 본격적으로 영화에 대한 꿈을 펼치기 위해 월남했다. 그와의 인터뷰가 실려 있는, 한국영상자료원에서 발간한 <한국영화를 말한다: 1950년대 한국영화>에 따르면, <자유부인>(1956)으로 유명한 한형모 감독의 권유로 편집에 관심을 갖게 됐다. 해방 이후 한국영화의 1세대 편집기사라 할 수 있는 양주남 기사로부터 본격적인 편집기술을 익혔으며 1958년경 ‘김희수편집실’로 독립한 뒤 친구 이도원 기사와 함께 편집에 관한 한 충무로의 ‘대부’로 활동했다. 고향친구인 김희수 기사의 권유로 ‘친구따라 강남가듯’ 편집 일을 시작했다는 이도원 기사가 “밤낮으로 너무 일이 고된 나머지 유치장에 가면 잠이라도 잘 수 있을 것 같아서, 경찰한테 잡히려고 둘이서 일부러 통행금지 시간에 밖에 나가기도 했다”고 할 정도로 당시 편집일은 힘든 노동이었다. 정창화 감독의 <햇빛 쏟아지는 벌판>(1960), 이만희 감독의 <마의 계단>(1964), <귀로>(1967), 김기영 감독의 <화녀>(1971)를 포함한 수십편의 영화는 물론 <만다라>(1981) 등 <길소뜸>(1985) 이전 거의 모든 임권택 감독의 영화들이 그의 손길을 거쳤다. 1993년 <한줌의 시간 속에서>를 끝으로 은퇴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