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24년 미국 시카고, 14살 소년이 유괴돼 잔인하게 살해당한다. 잘려나간 손발, 형체를 알아볼 수 없게끔 훼손된 얼굴. 현장에서 발견된 안경을 추적해 검거한 범인은 네이슨 레오폴드와 리차드 로브, 니체의 초인론에 심취된 19살 법대 졸업생들이었다. 미국사회를 경악게 한 끔찍한 살인사건을 토대로 만든 스티븐 돌기노프 원작의 뮤지컬 <쓰릴 미>는 자극적인 소재를 잔뜩 장착한 문제작이다. 명석한 두 소년을 모델로 한 인물, ‘나’와 ‘그’는 육체관계에도 거리낌이 없는 동성 연인으로 묘사되고, 멍청한 사회와 범인(凡人)을 조롱하는 대사는 신랄하게 공기를 가르며, 방화와 강도에서 유괴와 살인에 이르는 반복적인 범죄행위는 때론 최음제처럼 흥분되고 예술과 같이 아름다운 것으로 추앙받는다. 하지만 ‘나’의 고백으로 시작해 ‘나’의 고백으로 끝맺는 이 뮤지컬이 마침내 마주하는 것은 살인행각이 선사하는 일회성의 쾌락이 아니라 영혼까지 내던질 만큼 강렬한 사랑이다. 애증을 오가는 두 인물의 연기와 라이브 피아노 연주만으로 진행되는, 배우에겐 지옥도나 다름없을 이 뮤지컬은 2007년 초연됐을 당시 류정한, 김무열의 열연으로 눈길을 끈 바 있다. 이번 공연에는 초연 멤버인 두 배우 외에도 김우형, 김동호, 이창용 등 새로운 얼굴들이 합세했다(아쉽게도 다른 배우와 짝을 이룬 관계로, 류정한-김무열 콤비의 호흡은 다시 확인할 수 없다). 뮤지컬 <평강이야기> <사랑은 비를 타고>, 연극 <교회오빠> <지상 최대의 쇼> 등의 이동선 연출가가 지휘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