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피엔딩의 행복 지수 ★★★★★ 배우 스티브 부세미에 대한 신뢰도 상승 지수 ★★★★★ 전체적인 만족지수 ★★★
홈리스 토비(마이클 피트)는 우연히 길에서 만난 파파라치 레스(스티브 부세미)의 무료 조수를 자청하면서 최소한의 의식주를 해결하게 된다. 배우 지망생인 그는 톱가수 카르마(앨리슨 로먼)가 벌떼 같은 파파라치들에게 둘러싸여서도 그를 눈여겨보았을 정도로 미모의 청년. 그를 거둬준 레스는 “나는 파파라치가 아니라 프로페셔널 사진작가”임을 주장하면서도 밥벌이를 위해 치졸한 일을 마다지 않는 파파라치 중의 파파라치다. 대규모 음악상 시상식이 열리던 날 토비는 순전히 우연으로 카르마와 그 친구들의 뒤풀이 자리에 합류하게 되고 그녀의 생일 파티에까지 초대받는데, 레스는 억지를 부려 파티에 따라간다. 두 사람은 곧 파파라치라는 신분이 들켜 쫓겨난다. 토비는 레스를 원망하며 조수 일을 그만둔 뒤, 레스를 통해 안면을 튼 캐스팅디렉터 다나(지나 거손)의 눈에 들어 배우로 데뷔한다.
집도 옷도 없이 쓰레기통이나 뒤지고 살던 굼뜬 홈리스의 허황된 꿈이 이뤄지고, 심지어 그가 멀리서 동경하기만 했던 슈퍼스타가 자신의 연인이 되고, “진정한 사랑을 찾고 싶다”고 말 그대로 노래를 부르던 여인은 그 사랑을 얻고, 일개 파파라치에 불과하던 사진가는 일급 영화지 커버에 사진을 올리는 작가가 된다는 환상적인 이야기. ‘기뻐서 흥분한, 어쩔 줄 모르는’이라는 뜻을 가진 이 영화의 간단한 원제 ‘delirious’도 그렇게 지어진 게 아닌가 싶다. 로맨틱한 멜로도 됐다가 코미디도 됐다가, 스릴러의 긴장감과 뮤직비디오 스타일의 드라마 사이를 오가기도 하는 이 영화는 필연으로 인한 결과를 별로 고민하지 않는다. 우연과 우연, 운과 운끼리 엎치고 덮치는 발랄한 개연성과 익숙함을 탈피한 이야기 전개방식에서 이 영화는 인디영화만의 재치와 자유분방함을 보여준다.
여섯 번째 장편을 찍은 감독 톰 디칠로는 데뷔작 <조니 스웨이드>(1991)로 로카르노국제영화제에서 황금표범상을, 두 번째 연출작인 <망각의 삶>으로 선댄스영화제 각본상을 수상한 바 있다. <조니 스웨이드>는 검정 가죽 구두만 있으면 리키 넬슨의 스타일을 완성하게 되는 록스타 워너비가 어느 날 그 구두를 손에 넣는다는 이야기이고, 촬영현장에서 영화감독이 겪는 내외적 수난들을 하루 동안의 이야기로 표현한 <망각의 삶>은 “세상의 모든 독립영화 감독들에게 ‘헌정’하는” 위트있는 의도의 영화다. 전작들처럼 어디로 튈지 모르는 이 영화의 이야기 속에서 키를 쥔 인물은 스티브 부세미가 연기한 레스. 아버지에게 인정받지 못한 상처로 자기 과장과 고독이 두드러진 레스 역의 그는 마치 기량이 일정 수준 이상 올라가 떨어지지 않는 운동선수처럼 이번에도 감탄할 만한 입체성을 보여준다. 그가 바로 이 영화의 무게중심이다. 재치의 노하우를 과신한 연출로 이야기의 무게중심은 어딘가로 날아가 없어졌지만.
tip/ 이 영화에 출연하는 최고의 슈퍼스타는 바로 엘비스 코스텔로다. 엘비스 코스텔로는 1970~80년대에 전성기를 누린 영국 출신 싱어송라이터. 그가 남긴 수많은 히트곡중엔 영화 <노팅 힐>의 주제곡으로 쓰인 <She>도 있다. 요즘 젊은 세대는 그를 달콤한 팝가수로 오인하기 쉬우나 ‘스티프’라는 인디 레이블을 통해 나온 코스텔로는 데뷔 초 펑크적 감성을 담은 저항적인 가사와 대중성 있는 음악으로 주목받기 시작했다. 두번째 앨범 ≪This Year’s Model≫(1979)이 그의 출세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