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성두/ 서양미술사학자
“‘가난했던 유학 시절에…’라고 말을 꺼내려니 조금 쑥스럽다. 그러나 80년대 초의 독일 유학생들은 정말 가난을 친구 삼고 알바로 근근이 생계를 유지했다. 그때 학교식당 점심값을 아껴서 쾰른대성당 옆의 시네마테크를 풀방구리처럼 드나들었다. 그곳은 빛의 세계였다. 유학 간 아들이 공부 열심히 할 거라고 믿었던 우리 아버지가 들으면 기절초풍하시겠지만, 파스빈더와 잉마르 베리만 전작 상연 시즌에는 학교 수업도 땡땡이쳤다. 귀국길이 암담했던 건 무엇보다 시네마테크와의 이별 때문이었다. 그러나 절망도 잠시. 따끈따끈한 새 애인과 사랑에 푹 빠졌다. 그 이름도 어여쁘다, 서울아트시네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