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세계와 예술에서 흔한 것은 ‘반복’이다. 홍상수 영화에서는 영화의 한 부분에 나왔던 코멘트나 사물이 다른 장면에 다시 나타나고 이런 반복은 작품에 의미와 복합성을 더한다. 어떤 예술가들은 여기서 한발 더 나아가 계속 똑같은 것을 반복하기에 이른다.
개인적인 약점일 수도 있으나 나는 이런 유의 단조로운 반복에 무척 끌리는 편이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음악은 계속해서 똑같은 부분이 반복되는 음악들이다. 언더월드의 <루에틴>(Luetin) 또는 비버의 바이올린 독주를 위한 <파사칼리아>. 이 단순히 반복되는 부분들은 그다지 흥미로울 게 없는 것들이라 내가 왜 매료되는지 나조차도 황당하다. 그러나 수백번의 반복은 분명 위력적이다. 인간의 두뇌가 이상하게 작용하는 것일 수도 있으나 때로는 마술처럼 느껴진다.
작곡가 필립 글래스는 “반복 구조의 음악”이라고 부른 음악을 통해 자신의 명성을 쌓아왔다(그리고 그의 작품은 영화 사운드트랙으로 놀랍도록 효과적인 것이 입증된 바 있다). 어떤 이들은 그의 음악을 0과 1이 반복되는 현대 디지털 세계를 표현한 것으로 해석한다. 그러나 나는 그의 음악을 삶과 자연의 기하학적 측면에서 생각하고자 한다. 박테리아의 성장. 또는 해변가에 밀려드는 파도 소리 같은 오래된 패턴에 가까운.
드물기는 하지만 영화감독들도 단순한 반복의 매력에 사로잡히곤 한다. 마마스 앤드 파파스의 <캘리포니아 드리밍>은 왕가위의 <중경삼림>에 적어도 일곱번은 나온다. 나는 그 노래를 좋아하지 않지만 영화에서만큼은 매력적이다. 주류 할리우드영화에도 이처럼 반복되는 장면들을 통해 만들어진 상당히 재미있는 영화들이 있다. 예를 들어 해럴드 래미스의 <사랑의 블랙홀>(1993)은 영원히 같은 날을 다시 살게 된 남자에 대한 이야기다. 여기에서 반복은 완전히 논리적이고 플롯을 따라가는 데 반해 감정적인 차원에서 그것은 이 영화에 특이한 질감을 선사한다.
김기영 감독은 특정한 이미지, 사운드, 음악 또는 카메라의 움직임을 강박적으로 반복함으로써 기이한 효과를 창조하는 데 매우 능숙하다. 예를 들면 <하녀>에서 하녀의 방에서 피아노 방으로의 측면 트래킹 숏은 끊임없이 반복되면서 종국에는 마취적인 효과를 갖는다. 많은 관객에게는 무척 짜증나는 장면이기도 하지만 장선우의 <경마장 가는 길>에서 문성근과 강수연의 끊임없는 말싸움 역시 아마도 “단순반복”의 묘미를 십분 발휘한 것이리라.
그러나 질문의 여지없이 이런 면에서 가장 돋보이는 영화는 김곡, 김선의 2002년작 <자본당 선언: 만국의 노동자여, 축적하라!>다(이 영화는 제목만으로도 상을 받을 가치가 있다). 이 영화는 포르노 VCD를 파는 한 남자에 관한 평범한 블랙코미디 인디영화처럼 시작한다. 그러나 새로운 장면은 조금씩 변하면서 그전의 장면과 동일한 방식으로 시작된다. 그 다음 장면은 또 그전 장면의 반복이다. 영화가 진행될수록 우리는 거의 같은 장면을 계속해서 보게 된다. 그러나 계속 반복되면서 조금씩 변화하다가 마침내 너무나 기이해진다.
이 영화의 특이한 구조는 사람들을 똑같은 생활리듬 속에서 생활하게 하고 그 초과분을 착취하면서 마침내는 위기로 치닫는 자본주의 경제구조를 상징하고자 했다. 그런 줄 너무 잘 알지만, 내가 이 영화를 표면적인 수준에서만 즐긴다고 해도 형제 감독이 나를 용서해주길 바란다. 내러티브의 앞뒤로 계속 반복되는 이 미친 반복 구조가 머릿속에 각인되고 마지막에 미스 김이 주먹으로 귤을 으깨면서 카메라를 향해 미소지을 때면 나는… 춤을 추고 싶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