슈퍼히어로 능력치 지수★★★★ 혈중알코올농도 지수 ★★★★ 도움을 청하고 싶은 지수 ★
옴짝달싹이 어려울 정도로 꽉 막힌 도로다. 일진이 사나운 한 남자의 차는 하필이면 기찻길 한가운데에 서 있다. 한쪽에서는 기차가 무서운 속도로 달려온다. 앞차와 뒤차는 핸들을 꺾을 수도 없을 만큼 붙어서 있다. 아마도 슈퍼히어로들은 각자의 개성에 따라 남자를 구출할 것이다. 슈퍼맨이었다면 차를 가뿐히 들어 안전한 곳에 내려놨을 테고, 스파이더맨이었다면 기차와 주변 건물을 거미줄로 묶어놨을 것이다. 그렇다면 핸콕은? 차는 날려버리고, 기차는 몸으로 부숴버리면 그만이다. 그의 별명은 꼴통, 아니 술꾼꼴통이다.
<핸콕>은 주정뱅이 깡패 슈퍼히어로 핸콕(윌 스미스)의 캐릭터를 묘사하는 것만으로 별점의 반은 따고 들어갈 수 있는 영화다. 야생동물마냥 거리를 누비는 그는 지나가는 여자의 엉덩이를 탐하고, 헐벗은 채 돌아다니다 아이들을 놀라게 하는 LA의 사고뭉치다. 힘도 세고, 하늘을 날 줄 아는 데다 총알도 뚫지 못하는 몸을 가졌지만 그에게는 슈퍼맨 같은 멋진 폼과 매너가 없고, 스파이더맨처럼 시민의 영웅대접을 받지도 못한다. 슈퍼히어로로서 그의 자세는 목적지향적이다. 범인만 잡고 사람만 구하면 “도로파손, 건물파괴, 물난리, 화재” 등의 사건사고는 신경쓰지 않는다. 덕분에 그를 향한 사건고발만 600여건이다. 그렇게 거리의 부랑아로 살던 어느 날, 핸콕의 도움으로 죽음의 위기를 모면한 PR 전문가 레이(제이슨 베이트먼)가 핸콕의 이미지 개선을 위해 나선다. 그의 도움으로 어설프게나마 멋진 슈트와 매너를 갖춘 핸콕은 다행히 LA의 스타로 떠오른다. 하지만 레이의 가족과 친해진 핸콕은 점점 레이의 부인인 메리(샤를리즈 테론)에게 이상야릇한 감정을 느끼기 시작한다.
<핸콕>은 까칠한 슈퍼히어로의 사회적응프로젝트 혹은 갱생기다. 기껏 사람들을 구해놔도 욕을 먹는 핸콕은 스스로도 사회와의 관계에 무심하다. 그런 핸콕이 어설픈 사회화를 겪는 단계까지는 새로운 슈퍼히어로 영화의 탄생으로 봐도 손색이 없다. 사람들과 서서히 대화의 물꼬를 트고, 사람들이 좋아할 만한 슈트를 입고, 심지어 경찰들에게 일일이 “당신이 최고”라며 수줍게 칭찬하는 모습은 분명 다른 슈퍼히어로들에게서는 찾을 수 없는 즐거움이다. 경찰이 그를 고소한다는 설정이나 레이가 핸콕의 정체를 물으며 “당신은 우주에서 왔죠? 아니면 군 실험실에서 실험을 당한 건가요?”라고 던지는 질문의 유머도 나름 신선하다. 하지만 핸콕이 누구인지, 그리고 그와 미묘한 감정을 겪는 메리의 비밀은 무엇인지가 밝혀지면서 영화는 뒷수습에 어려움을 겪는다. 영화가 선택한 수습의 방식은 지구를 구해야 하는 명분과 의무감을 갖게 된 핸콕의 ‘성급한’ 재탄생이다. 차라리 원래 기획대로 R등급의 성인슈퍼히어로 영화였다면 어땠을까. 속편의 제작계획이 있을지 모르겠지만, 착해진 핸콕은 매력이 덜하다.
Tip/ 개봉 전 들린 소식에 따르면 원래 <핸콕>한테는 R등급다운 내용이 담겨 있었다. 무시무시한 폭력신과 음주 비행신이 문제가 되기도 했지만, 풍문에 따르면 이 가공할 슈퍼히어로가 잠자리에서만은 맥을 못 춘다는 설정도 있었다고. 이유는 다른 게 아니라 의외로 너무 작은 성기를 가졌기 때문. 하지만 PG-13등급을 받은 개봉 버전에는 핸콕의 키스신조차 나오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