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출, 제작, 각본, 촬영, 편집, 조명, 미술에 모두 참여하는 독립 애니메이션 감독이 작업하는 모습은 어떨지 궁금했다. <소이연>을 연출한 김진만이 기획의도, 창작과정, 메시지를 자막과 사진으로 설명한 수작업 일지를 남겨둔 덕분에 그 현장을 엿보게 됐다. 그는 버려진 나무 등을 작업실로 가져와 구조를 잡아나가고, 시나리오를 가다듬으면서 다큐멘터리 형식을 띤 연출 방향을 잡은 다음, 비행 카메라의 조종 장치를 설계하고, 캐릭터를 제작하며, 스톱모션 기법을 활용해 촬영에 임하고 있었다. 그렇게 오랜 시간에 걸쳐 만들어진 <소이연>은 제33회 서울독립영화제에서 대상을 받았다. ‘서울독립영화제 2007’의 슬로건은 ‘다른 영화는 가능하다’다. 꼭 김진만의 작업방식이 아니어도 자본과 권력의 지배를 받지 않는 자가 자신의 비전을 진실하게 담은 결과물이 ‘다른 영화’일 것임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 ‘서울독립영화제 2007 수상작’ DVD에 담긴 작품들은 그런 ‘다른 영화’들이다. 작품들의 면면에서 지나친 자의식, 거창한 문제의식, 예술가연하는 자세가 줄어든 대신 대중과 친밀하게 호흡하려는 의지가 눈에 띈다. 대표적인 예가 <무림일검의 사생활>이다. 전작 <아빠가 필요해>에서 어색한 순정적 삶을 살던 늑대에게 따뜻한 감성을 선사했던 장형윤은 이번엔 차가운 커피자판기에 가슴 뭉클한 온기를 찾아준다. 존재에 대한 엉뚱한 질문을 통해 세상의 선입견과 경계를 허무는 그의 세계는 무술과 순정 로맨스라는 이종 장르를 결합한 <아빠가 필요해>에도 여전하다. 이와 대조되는 실험애니메이션 <소이연>은 인간이 파괴한 자연의 복수를 그로테스크한 기법으로 표현했다. 특이한 질감, 획기적인 이미지, 실험적인 사운드가 인상적인 <소이연>은 프레데릭 벡 애니메이션의 미래 버전 같다. 가장 마음이 가는 작품은 <사과>다. 신 사과를 먹는 행위를 성장의 고통에 비유한 <사과>는 어두운 길을 유령처럼 떠도는 두 소녀의 겨울 하룻밤 오디세이다. 미조구치 겐지 영화의 여성들이 걸어갔던 질곡의 여정에서 영향을 받은 이 로드무비는 수천년에 걸쳐 소녀들이 가슴 졸이며 혹은 담담하게 걸었고, 걸어가야 할 길을 섬세하게 포착했다. <알게 될 거야>와 <김판수 당선, 그 이후>는 학교에서 벌어지는 사건을 사회 저변에 위치한 문제점의 알레고리로 삼은 작품들이다. 두 영화는 자리를 간수하고자 학생의 사소한 실수를 무책임하게 이용하는 계약직 여선생의 비루함과 반장 자리를 놓고 각각 폭력, 배경, 공부의 일인자들 사이에서 벌어진 다툼의 허무함을 빌려 관객을 일종의 ‘역할 게임’ 안으로 몰아넣는데, 권력과 폭력, 눈앞의 이익과 비참한 현실의 관계를 드러내고 현실을 재인식하게 만드는 힘이 좋다. <투수, 타자를 만나다>는 크게 뒤진 상황에서 구원투수로 등판하는 투수의 심각한 태도와 주위의 안일한 광경을 대비시킴으로써 웃음을 자아내는 코미디로서, 허술한 듯 숨을 조이게 만드는 시스템이 느껴질 즈음엔 씁쓸함이 동반되는 특이한 작품이다. DVD에 수록된 짜임새있는 부록들도 둘러볼 만하다. <소이연> <무림일검…> <투수…>에는 특별 영상 세편(7분, 8분, 9분)이 지원되고, <알게 될 거야> <사과> <김판수…>엔 감독과의 인터뷰(13분, 17분, 8분)가 제공된다. 그외 영화제의 이모저모를 담은 영상모음(24분)은 그간 가지 못했던 사람을 향한 미래의 유혹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