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아기 때 까꿍 놀이 안 하고 자라면 청소년기에 불쑥 까꿍 놀이 하자고 떼쓰고, 한창때 연애 실컷 안 하면 중장년, 황혼기에 사고 치게 마련이다. 사람은 한때 해야 할 일이 있고 그걸 하고 넘어가야 제대로 성장한다.
국민 앞에 고개 숙인 지 얼마나 지났다고 양복에 주름이 펴지기도 전에 합의문도 없는 미국 쇠고기 수입위생조건 고시를 강행하고 촛불집회에 대해 불법·폭력 운운하며 공안탄압을 하는지 참으로 딱하지만, 백번 양보해보자. 그래, 사랑이 부족해서야. 더 딱한 것은 자신에게 결핍된 게 누구의 사랑인지 모른다는 것이다.
대통령과 정부는 하나님과 미국의 사랑이 부족하다고 여기는 모양이다. 우선 정국을 선과 악의 대결로 본다. 사탄의 무리를 누르기 위해 살수차와 소화기와 방패, 심지어 경찰의 이빨까지 동원했다. 형님 미국의 심기는 국제적으로 전례가 없는 ‘고시 확정 뒤 합의문 완성’이라는 생쑈로 달랬다. 그러고도 부시의 방한 일정이 불투명하자 어쩔 줄 몰라 한다.
내 짧은 생애를 돌아보건대 우리 국민은 대체로, 가능한 한, 위정자를 사랑해주는 쪽으로 DNA가 만들어져 있다. 하지만 ‘국가 정체성에 대한 도전’이나 ‘불법·폭력’은 ‘엄격히 구분해 대처’한다. 대통령만 그런 게 아니란 말이다. 고시 강행은 국민 여론을 무시한 것일 뿐만 아니라 법적 절차도 제대로 갖추지 못했다. 법으로 명시된 20~60일간의 의견수렴도 거치지 않고 추가 협상(그나마도 미국 무역대표부는 협상이 아니라 ‘토의’라고 표현한다며) 결과 발표 나흘 만에 해버렸다. 상대국 대표가 서명으로 합의한 문서도 첨부하지 않았다.
굉장한 성과인 양 내세운 30개월 미만 연령검증 품질체계평가 프로그램(일명 한국 QSA)이나 30개월 미만 머리뼈 등의 수입금지도 눈 가리고 아옹일 가능성이 농후하다. 미국 정부가 보증해준 게 아니기 때문이다. 미국은 한국 소비자의 신뢰가 회복될 때까지 ‘당분간’ ‘잠정적으로’ 그렇게 하는 게 좋겠다는 업자 사이의 자발적이고 과도기적인 조처로 이를 받아들인다. 결국 추가협상한다고 그 난리치고 바뀐 것은 ‘고시를 확정한다’는 것뿐이다. 이렇게 드러내놓고 졸속으로 대국민 사기극을 치는 것이야말로 국가 정체성에 대한 중대한 도전이 아닐까.
애 키우는 것도 그렇지만 대통령과 정부가 제대로 일하게 하는 것에도 치러야 할 몫이 있는 것 같다. 지금 결핍을 채워주지 않으면 점점 더 손쓰기 어려워진다. 국가 정체성을 수호하고 법을 지켜야 할 대통령과 정부가 엉뚱한 데 사랑을 애걸복걸하지 않도록, 온 국민이 뜨겁게 사랑해주자. 활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