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말을 이전에도 외신기자클럽에서 했을 테지만 한번 더 말하고 싶다. 나는 상하이국제영화제를 좋아한다. 상하이는 위대한 역사와 사람들을 낳은 위대한 도시이고, 중국영화의 출생지이기도 하다. 그런 만큼 세계적인 수준의 영화제를 하나쯤 갖는 것은 당연하다. 프랑스에 본부를 두고 있는 세계영화제작자연맹(FIAPF)에서 A급으로 인정하고는 있지만, 여전히 11년의 역사에도 상하이는 세계적인 수준의 영화제에는 아직 못 미친다. 그러나 물론 안팎의 온갖 어려움에 맞서 최선을 다하고 있다.
지난 몇 십년간 중국영화산업은 베이징을 기반으로 삼았다. 베이징은 상하이영화제에 말로는 도움을 주는 척하지만 실제로는 별 도움을 주지 않고 있다. 베이징의 감독들은 상하이에 내려와 며칠씩 머물지만 대개는 곧바로 북쪽 수도의 자기들만의 작은 울타리 속으로 되돌아가버린다. 물과 기름처럼 다른 두 도시 사이에는 아직도 상호불신감이 남아 있다.
중국어를 말하거나 읽을 수 없는 외국인들은 대개 상하이영화제의 체계없는 운영에 당황해 끼리끼리 뭉쳐 지내게 된다. 이번 11번째 영화제(6월14~22일)의 운영은 조금 나아졌지만 아직도 갈 길이 멀다. 나는 두번이나 내 패스로 들어갈 수 있는 스크리닝인데도 들어갈 자격이 안 된다는 말을 들어야 했고, 한번은 실제 전문적인 경호원으로 보이는 사람에 의해 상영장에서 끌려나와야만 했다.
그런데도 왜 상하이영화제를 좋아하는가? 상하이영화제는 영화평론가들을 위해서가 아니라 온갖 종류의 영화를 좋아하는 사람들을 위한 프로그래밍을 하기 때문이다. 올해 상영된 270편의 영화들은 세계영화의 다채로운 경향들을 보여주었다. 베를린과 각종 영화제들에서 찬사를 들었던 영화들부터 현재 영화제작의 실제 경향들을 좀더 제대로 보여주는 영화들까지.
수석프로그래머인 케인 유는 미국영화들을 들여오는 데 애를 먹어야 했고 베이징 중심의 중국영화산업 구조 때문에 어려움을 겪었다. 그러나 상하이영화제는 열린 프로그래밍으로 기존 영화제의 틀을 깼다. 엄격하고 편협한 국제영화제들은 한국의 충무로영화제처럼 이런 방식의 사고전환을 보여줄 필요가 있다. 상하이영화제는 좀더 넓은 범위의 중국 본토 영화들을 볼 수 있는 좋은 기회다. 올해는 약 60편의 영화들이 선보였는데(9월의 연례 베이징 상영회에서와 비슷한 숫자다), 이것은 현재 제작된 영화의 15%만 보여준 것이었지만, 적극적으로 뭔가를 찾으려는 이들에게는 분명 몇편의 새로운 발견작이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다른 아시아영화제의 프로그래머들은 어디에 있었는가? 분명 상하이는 아니었다. 열린 사고를 하는 또 다른 영화제인 하와이영화제 관계자들은 있었지만, 부산, 도쿄, 홍콩의 프로그래머들은 찾아볼 수 없었다(홍콩의 프로그래머는 베를린과 로카르노에서도 아시아영화 프로그래밍을 담당하고 있다). 부천은 이미 상영작들이 결정되었음에도 불구하고 한상준 집행위원장을 비롯한 두명의 관계자가 7월 행사에 중국 산업 관계자들의 관심을 끌기 위해 영화제를 찾았다.
프로그래밍은 언제나 똑같은 이름, 똑같은 유의 영화만 찾고 똑같은 작은 네트워크에만 의존한다면 굉장히 쉽게 할 수 있는 일이다. 그렇지만 매일매일의 스크리닝에 꼬박꼬박 나타나서 더 넓은 범위의 감독들과 어울리면서 제대로 하고자 한다면 무척 어려운 일이기도 하다. 중국 본토 영화의 현재를 알기 위해서는 그 나라를 정기적으로 방문하고 열린 마음으로 힘든 일을 하지 않고는 불가능하다. 따라서 세계의 주요 영화산업 중에서도 중국영화가 여전히 가장 잘 알려지지 않고 외국에서 가장 제대로 소개되지 않고 있는 것은 어쩌면 너무 당연한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