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네21>은 한국영상자료원과 함께 5월9일 문을 연 한국영화박물관을 위한 영화인들의 적극적인 협조를 요청하며 전시품 기증 캠페인을 벌입니다. 43번째는 장산곶매가 기증한 ‘파업전야, 탄압분쇄를 위한 공동투쟁위원회 자료집’입니다.
광주민주화운동을 다룬 16mm 장편영화 <오! 꿈의 나라>(1989)를 둘러싸고 공륜의 사전심의에 대한 법정공방이 벌어지던 1990년, 장산곶매는 두 번째 영화 <파업전야>로 다시 한번 사회운동으로서의 독립영화의 힘을 확인시켜주었다. 영화적 실천에 동의하는 사람들의 모금으로 2천만원의 제작비를 마련하고 경인지역 노동현장을 공동 취재한 대본을 바탕으로 실제로 파업 중이던 인천의 한독금속현장에서 석달간 촬영된 극영화인 <파업전야>는 어느 사업장에서나 느낄 수 있었던 벼랑 끝 노동현실을 드러내고 노동자와 호흡해 10만 관객을 이끈 ‘성공한 사회영화’다. 검찰은 <파업전야>가 파업을 선동하는 내용이라며 상영 첫날부터 필름과 영사기를 압수하고 영화관계자와 관객까지 연행했으며 전남대에서는 헬기까지 동원해 대대적인 영화필름 압수작전을 벌였다. 공권력의 탄압은 오히려 <파업전야>의 상영을 들불처럼 번지게 했다. <파업전야>를 보는 행위는 영화 한편을 보는 것 이상의 ‘정치집회’에 나가는 의미를 가졌다. 상영장소는 손수건으로 얼굴을 가리고 각목을 든 학생들이 사수했고 구호와 운동가 속에서 영화가 시작되었다. 관객은 영화 속 노동자들과 함께 분노했고 노래했으며 흐느꼈다. 장산곶매가 기증한 ‘파업전야, 탄압분쇄를 위한 공동투쟁위원회 자료집’은 <파업전야>의 상영과정에 대한 자세한 기록과 언론의 반응, 각계의 성명서가 담긴 첨예했던 상영투쟁에 대한 기록이다. 당시 ‘한겨레 그림판’의 박재동은 <파업전야2>를 시리즈로 지상 중계했고, ‘노동자영화의 새 지평을 여는 기폭제’, ‘민족영화의 모범’ 등의 평가를 받았다. <파업전야>의 힘은 다름 아닌 당대 서민과의 깊은 공감대였다. 공권력으로도 그것을 막을 길은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