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전 한국에 머물고 있는 서양 사람에게 한국의 무엇이 좋냐고 물은 적이 있다. 그는 “역동적이잖아. 매일 뭐든 바뀌고”라고 간단하게 답했다. 어쩌면 한국영화산업 또한 비슷할지 모른다. 메이저 스튜디오들이 공고한 시스템을 구축하고 있는 할리우드와 달리 한국영화산업은 시시때때로 변화를 꾀해왔다. 그 때문에 충무로의 산업적 안정성은 요원한 일이 되기는 했지만, 어쩌면 그것은 현 단계 영화산업의 유일한 발전모델인지도 모른다.
2008년 여름은 한국영화산업이 또 한번 역동의 물결을 타는 시기가 될지도 모른다. 그 첫 번째 변수는 강우석 감독과 시네마서비스다. 2004년 충무로 토종자본과 벤처자본의 결합이었던 플레너스를 대기업 CJ에 넘긴 이후 산업적 영향력을 잃어왔던 그는 이후 CJ엔터테인먼트와 긴밀한 관계를 맺으면서 현재에 이르렀다. 하지만 시네마서비스는 이제 한계상황에 봉착해 있다. <강철중: 공공의 적1-1> <신기전> <모던보이>처럼 기대작을 만들면서도 CJ에 메인 투자사와 배급사의 자리를 넘겨줄 정도로 투자자금이 부족하며, 배급 업무는 외화를 배급 대행하는 정도에 그치고 있다. 아니나 다를까, 최근 강우석 감독의 행보가 빨라지고 있다. 주변에 따르면 그는 ‘새로운 판’을 구상 중이다. “안정적으로 영화를 만들 수 있는 시스템”을 열망하는 강 감독과 힘있는 콘텐츠를 찾고 있는 자본이 만난다면 그의 새 판은 쉽게 열릴 수도 있다. 만약 강 감독이 획기적인 방식으로 새 판을 짜게 된다면 그와 호흡을 맞춰온 CJ가 약화될 수도 있는 탓에 궁금증은 더해간다. 두 번째 변수는 지난 4월 말 쇼박스를 퇴사한 김우택 전 대표다. 그가 쇼박스를 나오게 된 이유도 관심거리지만, 그보다 더욱 흥미진진한 것은 그가 앞으로 나아갈 길이다. 항간에 따르면, 쇼박스에서 관리능력을 인정받았던 그는 외국계 투자회사로부터 커다란 자본을 투자받아 이를 운용할 방안을 짜고 있다고 한다. 정작 본인은 “아직 아무것도 결정된 게 없다”고 말하지만, 충무로에서는 그가 이 풍부한 자본을 바탕으로 영화뿐 아니라 미디어 산업에까지 적지 않은 영향력을 미칠 것으로 보고 있다.
물론, 새 판을 짜려는 두 사람의 구상이 어떤 열매를 맺을지 지금으로선 알 수 없다. 상황에 따라선 기대에 못 미치는 활동을 벌이고 있는 통신자본의 길을 밟을 수도 있고, 새 판 자체가 아예 열리지 않을 수도 있다. 그럼에도 두 사람의 행보에 관심을 쏟게 되는 이유는 뭔가를 바꿀 수 있는 역동적 기운을 맞이해야만 지금의 한국영화산업이 숨통을 틔울 수 있을 것이란 기대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