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가에 발돋움해 옆집 텔레비전을 보는 아이들, 미더덕을 만원 넘게 팔았다며 도둑질한 것처럼 가슴 떨려하는 어머니, 동생들의 끼니를 위해 수돗물로 배를 채우는 큰누나. 이 일화들을 읽고 있노라면 어느새 책 앞장으로 달려가 작가의 나이를 재차 확인하고 싶어진다. 1977년생의 만화가 최규석(<공룡 둘리에 대한 슬픈 오마주> <습지생태보고서>)이 자신의 가족들을 인터뷰해 그린 자전적 이야기 <대한민국 원주민>은 1980~90년대의 풍경이라기보다는 “내가 어렸을 적엔…”이라며 운을 떼는 어르신들의 기억 속에나 존재할 법한 세계다. 하지만 그것은 역으로 우리의 시야가 얼마나 좁았는가를 방증하는 것이기도 하다. 작가가 말하는 ‘대한민국 원주민’이란 “갑자기, 그리고 너무 늦게 세상의 흐름에 휩쓸려 미처 제 삶의 방식을 손볼 겨를도 없이 허우적대야 했던 사람들”. 근대적인 시민교육을 제대로 받은 적도 없으며, 그렇다고 현대사의 페이지에 ‘민중’이라는 이름으로 기록되기에도 적합하지 않은 사람들. 최규석은 분명히 존재하지만 우리의 눈에 보이지 않았던 이들의 이야기를 한푼의 과장없이 진솔하게 펼쳐나간다. 개발과 변화의 급물살이 제치고 지나간 자리에 가만히 남아 있는 삶이, 인간의 얼굴이 바로 그곳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