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도 예상치 못한 일이다. 검찰이 지난 6월16일 웹하드 업체 대표이사들에게 구속영장을 발부하자, 네티즌이 웹하드를 고소한 영화인들을 성토하고 나섰다. 대표이사가 구속된 업체는 나우콤(피디박스, 클럽박스), 미디어네트웍스(엠파일), 한국유비쿼터스기술센터(엔디스크), 아이서브(폴더플러스), 이지원(위디스크) 등 5개다. 네티즌이 영화인들에게 철퇴를 가한 이유는 그동안 손쉽게 영화를 다운로드해 볼 수 있는 창구를 막아서가 아니다. 피디박스와 클럽박스를 운영하는 나우콤의 또 다른 자회사가 다음 아고라광장과 함께 촛불시위의 성지로 떠오른 인터넷 방송사이트 ‘아프리카’이기 때문이다.
“쇠고기 재협상의 대가로 스크린쿼터를 폐지하자!” “고소를 취하하지 않으면 한국영화 불매운동합시다!” 검찰의 발표가 있었던 지난 6월17일 이후 스크린쿼터문화연대, 한국영화제작가협회 등 영화인단체 홈페이지에는 고소 취하를 요구하는 네티즌의 게시물이 이어졌다. 또한 불법복제 방지를 위한 영화인협의회에 소속된 128개 단체 및 영화사들 가운데 상위명단에 있는 제작사 나우필름의 홈페이지로도 항의 게시물이 빗발치고 있다. 영화인회의와 여성영화인모임의 홈페이지는 그나마 적은 수의 게시물이 올라오는 상태다. 스크린쿼터문화연대의 윤형각 활동가는 “평소에는 20, 30명 정도의 방문객이 있던 홈페이지에 어제 하루 700명가량의 방문객이 찾아왔다”며 “스크린쿼터 집회 때는 영화인들이 도와달라고 하더니, 왜 촛불시위를 방해하고 있냐는 이야기가 대부분이었다”고 전했다. 그동안 개별적으로 촛불시위에 참가해온 영화인들로서는 황당한 일이다. 지난 6월10일에는 영화배우 문소리가 촛불시위의 연단에 올라가기도 했으며 이춘연 영화인회의 이사장을 비롯해 류승완 감독, 장준환 감독 등도 함께 촛불을 들어왔다. 한국영화제작가협회 지적재산권팀의 김지후 팀장은 “영화인들이 스크린쿼터 폐지에만 열을 올리면서 쇠고기 문제에는 손을 놓고 있는 것 아니냐는 이야기들이 많았다”며 “감독과 배우뿐만 아니라 스탭들이나 영화관계자들도 그동안 촛불시위에 참여했다. 웹하드에 대한 고소는 지난 3월에 제기한 건데 민감한 시국 때문에 오해가 생긴 것 같다”고 말했다.
구속영장이 발부된 시점을 둘러싼 의혹과 논란
논란의 원인은 ‘시점’이다. 정리하자면 왜 하필 ‘아프리카’가 촛불시위를 생중계할 수 있는 창구를 마련하고 있는 현 시점에서 구속영장이 발부되었는가다. 검찰은 중간수사 결과 발표에서 “이들 업체는 영화파일을 웹하드에 직업적으로 올리는 ‘헤비 업로더’들에게 영화를 내려받는 다운로더들로부터 받은 금액의 10%가량을 주고 나머지 90%를 챙기는 방식으로 수익을 올리며 불법복제 유통에 가담해왔으며, 이들 웹하드 업체의 지난해 매출액을 합하면 600억원이 넘는다”고 밝혔다. 하지만 이번 사건에 대해 나우콤쪽은 “그동안 검찰조사과정에서 나우콤은 타 업체와는 달리 저작권 침해를 조장하는 행위를 일체 하지 않았으며, 저작권 보호를 위한 기술적 조치와 서비스 운영상에 최선의 조치를 취했음을 충분히 입증해왔다”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우콤 문용식 대표이사를 구속한 것은 아프리카로 접속이 몰리면서 과잉 압박 수사로 촛불시위의 확산을 막으려는 정부 당국의 정치적 의도가 개입된 것은 아닌지 의심을 지울 수 없다”는 입장을 표명했다. 네티즌 역시 현 시점에 나우콤의 대표를 구속한 배경을 두고 촛불시위를 생중계한 것에 대한 정부의 정치적 보복 가능성을 의심하고 있는 중이다. 이러한 의심도 무리는 아니다. 검찰의 발표가 있었던 6월17일 이명박 대통령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장관회의 개막식에 참석해 “익명성을 악용한 스팸메일, 거짓과 부정확한 정보의 확산은 합리적 이성과 신뢰까지 위협하고 있다”며 “인터넷의 힘은 신뢰가 담보되지 않으면 약이 아닌 독이 될 수도 있다”고 지적했다. 대통령의 발언 이후 경찰에서는 “온라인 여론 동향을 파악하고 왜곡된 정보에 대한 신속한 대응을 하겠다”는 취지로 ‘인터넷 정보분석 전담팀’ 신설을 검토하고 나섰다. 대통령의 발언 이전에도 최시중 방송통신위원장의 언론장악 의도와 KBS를 향한 표적감사 여부 등에 대해 논란이 일고 있었다. 미국산 쇠고기를 둘러싸고 다음의 아고라광장 등 인터넷에서 터져나온 반대여론을 잠재우려는 의도를 예측할 수 있는 시점이다. 하지만 검찰은 이에 대해 “나우콤의 문용식 대표는 웹하드인 피디박스의 운영과 관련해 구속한 것이며, 아프리카는 애초 수사 대상에 포함되지 않았고, 저작권법 위반 수사도 촛불집회가 본격화되기 이전부터 시작됐다”고 밝혔다.
촛불시위와는 무관하게 진행된 소송 과정
‘정치적 보복가능성’의 입장과 ‘할 일을 한 것뿐’이라는 입장 사이에서 영화인들은 ‘자기 밥그릇만 챙기려 한다’는 성토를 받고 있다. 말하자면 영화인들이 중차대한 시국에도 불구하고 무리하게 고소를 진행해왔다는 것이다. 하지만 <한국영화 동향과 전망>(영화진흥위원회 발간) 5월호에 실린 ‘불법복제 방지를 위한 영화인협의회의 소송 현황과 향후 추진 과제’에 따르면 영화인협의회의 소송은 촛불시위와는 무관하게 진행돼왔다. 영화인협의회는 이명박 대통령이 취임하기 전인 2007년 8월, 11개 업체 124개 사이트에 1차 서비스 중지 요청서를 발송했고 이후 2차 중지 요청서 발송을 비롯해 증거보전 신청 등을 거쳐 지난 3월21일 저작권침해 정지 가처분 신청과 저작권침해 정지 민사청구를 서울 중앙지법에 접수했다. 고소장을 접수받은 검찰이 본격적인 수사에 들어간 건 지난 4월22일이었다. 소송 대상인 8개 업체에 대한 압수수색을 통해 관련 자료를 확보한 검찰은 5월21일에는 헤비 업로더인 남모씨에 대한 구속영장을 청구했고 6월 초에는 최신 영화를 업로드하는 업로더, 릴그룹을 포함한 관련 보강수사를 진행했으며 6월 중으로 수사 종결 및 처벌 수위가 결정될 예정이었다. 영화인협의회로서도 억울한 것은 ‘시점’이다. 역시 ‘왜 하필’ 지금이어야 했는가란 문제다. “소장을 접수하면 이후의 사안에 대해서는 관여할 수 없는 것”이라고 말한 김지후 팀장은 “우리가 어느 시점까지 수사 결과를 내놓으라고 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누구는 처벌하고 누구는 처벌을 약하게 해달라고 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라고 말했다. 또한 영화인협의회가 웹하드를 고소한 혐의는 ‘저작권법 위반 방조’였으며 이후 검찰은 이들 웹하드 업체가 ‘저작권법 위반을 방조한 것이 아니라 전범’이라고 밝혔다. 소장을 제출할 당시 아프리카란 사이트가 나우콤의 자회사인 줄도 몰랐던 영화인협의회로서는 곤혹스러운 상황인 것이다. 다행히 6월18일부터 스크린쿼터문화연대와 한국영화제작가협회 홈페이지에는 영화인들을 성토하는 게시물이 현저히 줄고 있다. 다음 아고라광장에도 영화인협의회의 고소가 촛불시위와는 관련이 없다는 내용의 의견이 늘어나는 추세다. 한 충무로 관계자는 “영화 스탭들이 아고라에도 글을 올리는 한편, 일반 네티즌도 영화인협의회에 대한 공격을 자제하는 분위기”라며 “어제는 대부분의 기사들이 아프리카 사이트에 초점이 맞춰졌지만 이제는 그런 부분도 자제되고 있기 때문인 것 같다”고 전했다. 어쩌면 이번 사건은 2MB 시대의 또 다른 해프닝일 수도 있다. 합법 다운로드 시장을 향한 길과 쇠고기 재협상을 관철시키는 길, 그리고 청와대로 향하는 길을 모두 명박산성이 가로막고 있는 모양새다.
불법복제 방지를 위한 영화인협의회의 소송일지와 현황
2007년 3월 영화 관련 128개 단체 및 민간회사가 연합, 불법복제방지를위한영화인협의회(이하 영화인협의회) 발족
2007년 8월 협의회 회원사의 저작물 리스트 취합을 완료. 111개 업체 124개 사이트에 1차 중지 요청서 발송
2007년 10월 2차 중지 요청서 발송
2008년 2월 저작권보호센터와 협력, 주요 웹하드의 저작권 침해 증거 수집 완료. 국내와 영화 저작권자의 위임장 확보. 주요 웹하드 업체에 증거보전 신청
2008년 3월7일 주요 웹하드 업체에 증거보전 집행
2008년 3월21일 8개 주요 웹하드 업체에 대하여 저작권침해 정지 가처분 신청
2008년 3월25일 저작권침해 정지 민사청구를 서울중앙지법에 접수. 형사소송 제기
2008년 4월22일 검찰, 8개 웹하드 업체에 대한 압수수색 실시
2008년 5월21일 온라인상의 헤비 업로더인 남모씨에 대한 구속영장 청구
2008년 6월16일 영화를 불법으로 다운로드할 수 있도록 방조한 나우콤 등 7개 업체를 적발, 5개 웹하드 업체 대표이사 구속 국내 대표적인 릴리즈 그룹인 주피트와 신하의 조직원 6명 적발, 4명 구속기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