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티브 카렐의 코미디 ★★★ 스파이물의 매력 ★☆ 앤 해서웨이의 매력 ★★★★☆
피터 시걸 감독(<총알탄 사나이3> <성질죽이기> <첫키스만 50번째>)은 코믹스파이물 <겟 스마트>의 연출을 처음 제안받았을 때 아무 생각이 없었다. 스티브 카렐이 주연 역할에 사인했다는 뉴스를 접하고 그는 친구인 주드 애파토우를 찾아갔다. <40살까지 못해본 남자>(2005) 개봉 준비로 여념이 없던 친구 감독에게 시걸은 부탁했다. “나도 그 영화 좀 볼 수 있을까? 내가 그 사람에 대해 아는 게 <앵커맨>(2004)이랑 <데일리 쇼>(존 스튜어트가 진행하던 코믹 뉴스쇼)밖에 없어서 말이지.” <40살까지…> 시사 이후 피터 시걸은 마음껏 스티브 카렐과 영화에 대한 이야기를 진행시킬 수 있었다고 한다.
과연 <겟 스마트>는 스티브 카렐의 코미디 연기를 보는 것만으로 전반부까지는 쉴틈없이 웃긴 영화다. 카렐이 연기하는 맥스웰 스마트는 미국의 비밀스파이집단 컨트롤 소속의 요원. 제법 근사한 직업 같지만 스마트는 이름처럼 비상한 머리와 뚱뚱한 몸매 탓에 만년 내근직 신세다. 그는 지금껏 기를 써서 다이어트를 하고 현장요원 선발 테스트에도 통과했지만 “머리가 좋기 때문에” 내근직을 벗어나지 못했다. 어느 날 컨트롤이 의문의 습격을 당하고, 세계 각지로 파견된 현장요원들이 줄줄이 살해당하면서 마침내 “인력 부족 사태”를 맞아 현장에 파견되는 ‘행운’을 누리는 스마트. 그는 노련한 현장요원 99(앤 해서웨이)와 함께 컨트롤의 숙적인 동유럽쪽 스파이집단 카오스(KAOS)의 정보를 캐내도록 지시받고, 체첸에서 비밀리에 핵무기가 대량 제작되고 있다는 사실까지 접수해 이를 막으러 나선다.
피터 시걸이 확신을 얻은 것처럼 <40살까지 못해본 남자>를 본 관객이라면 스티브 카렐의 장기가 이 코믹한 스파이물 플롯에서 어떤 화학작용을 일으킬지 짐작할 수 있다. 코미디배우로서 스티브 카렐의 무기는 그 어떤 상황에서도 펴지지 않는 돌덩이 같은 얼굴. 눈물도 웃음도 없이 언제나 깊은 근심을 품은 듯한 눈빛으로 임무를 수행하는 어수룩한 스파이를 떠올려보라. 스티브 카렐 본인의 말을 빌려 <겟 스마트>는 “웃기는 <본 아이덴티티>”라고 할 만하다. <겟 스마트>에는 원작의 코미디 정신을 계승하기 위한 노력도 적지 않다. 신발 바닥을 뺨에 갖다대고 통화하는 ‘신발폰’이나 원뿔형 모양의 1인 방음장치(이것을 회의 중에 설치하면 방음이 워낙 잘돼 서로 대화가 되지 않는다) 등은 원작 드라마에서 히트를 쳤던 코믹 아이템이다.
그러나 <겟 스마트>는 110분 내내 웃기고 재미있는 영화는 아니다. 어수룩한 스마트와 날카롭고 노련한 요원99간의 엉성한 파트너십을 보는 재미가 어느 순간 단물 빠진 느낌이 들기도 하고, 자타공인 컨트롤의 인기스타 요원23(드웨인 존슨)의 캐릭터도 애매한 듯하고, 컨트롤의 적수 카오스의 매력도 보이지 않는다. 이중스파이 음모가 개입된 스파이물로서 <겟 스마트>의 플롯은 워낙 흐릿하고 늘어진 탓에 따라잡는 재미가 적다. 60분짜리 TV 에피소드에 적절한 스토리로 두 시간짜리 집중력을 끌어내는 것은 무리다. 일부 관객에겐 요원99 역의 앤 해서웨이가 지루함을 덜어주는 요소로 작용할 수도 있겠다. 샤넬 선글라스와 버버리 모직코트를 걸친 모습은 패션에 관심 많은 여성 관객에게, 초미니 드레스 아래 긴 다리를 쭉쭉 뻗으며 레이저 방범망을 통과하는 모습은 남성 관객에게 어필할 거란 뜻이다. 연기를 잘했단 얘긴 아니다.
Tip/ 건축에 관심이 없더라도 영화에 등장하는 LA 디즈니홀은 눈여겨볼 수밖에 없을 것이다. 세계적인 포스트모더니즘 건축가 프랭크 게리의 작품이다. 1987년 건축이 시작됐으나 고비용으로 중단됐다가 재개, 16년 만에 완성된 건물이다. 2004년 오픈.
원작 TV시리즈 <겟 스마트>
TV시리즈 <겟 스마트>는 멜 브룩스와 벅 헨리가 창조한 스파이 장르 풍자물이다. 드라마의 주인공은 요원86 맥스웰 스마트(돈 애덤스)와 비밀스런 정체의 요원99(바바라 펠던). 이들은 미국의 비밀스파이조직 콘트롤 소속이며 이들의 적수는 공산주의 진영이 만든 스파이조직 카오스다. 영화에서처럼 드라마의 뼈대는 어수룩한 요원 스마트와 노련한 요원99의 웃지 못할 파트너십이다. 스마트의 서투름과 무능력함으로 두 요원은 늘 곤경에 빠지지만 어이없는 행운과 요원99의 능력으로 어떻게든 그날의 임무를 완수한다.
미국의 베트남전 참전과 냉전시대의 정치·사회적 긴장감을 웃음으로 풍자하고 희화화한 <겟 스마트>는 당대 엄청난 인기를 끌어모았다. 바바라 펠던은 시리즈 방영 종료 뒤 10년 동안 사람들로부터 “오, 당신, 요원99죠?”라는 말을 듣고 살았을 정도. <겟 스마트>는 스마트 요원이 이용하는 온갖 첨단 스파이 무기들로 특히 웃음을 자아냈는데, 영화에도 등장한 신발폰과 원뿔 모양의 방음장치는 방영 내내 가장 히트를 쳤던 아이템이다. 신발폰이 히트하자 드라마 제작진은 스마트 요원에게 각종 변형된 전화기를 들리기도 했다. 한 에피소드에서는 벽시계의 큰 바늘과 작은 바늘로 전화통화하는 장면도 등장했을 정도.
드라마 <겟 스마트>의 영화화는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돈 애덤스 주연으로 만들어진 <누드 폭탄>(The Nude Bomb, 1980)과 <ABC>의 TV영화 <겟 스마트 어게인!>(1989)에 이어 세 번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