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영화에서 가장 미국적인 장르는 슈퍼히어로 영화일 것이다. 그것은 30년부터 50년대까지 가장 미국적인 장르영화가 서부극이었던 것과 같은 의미다. 훗날 이탈리아에서 스파게티 웨스턴을 만들고 한국에서 만주 웨스턴을 만들었지만 서부는 본디 미국영화의 무대였다. 서부개척시대를 거치지 않은 국가에서 서부극을 만드는 일은 예외적으로만 가능했다. 같은 맥락에서 미국이 아닌 국가에서 슈퍼히어로 영화를 만드는 일은 아주 드물게 일어났다. 일본이나 한국의 전대물이나 홍콩, 인도의 슈퍼히어로물이 있지만 기껏해야 할리우드 슈퍼히어로물의 패러디처럼 보인다. 슈퍼히어로물이 지극히 미국적으로 보이는 이유는 만화 원작을 미국 작가가 그렸기 때문만은 아니다. 악당의 정체성이나 영웅의 탄생신화 혹은 영웅의 피부색에서 슈퍼파워를 가진 국가의 정체성이 드러난다는 걸 부정하기 힘들다. 노골적으로 애국심에 호소한 작품도 있고 2차대전, 미·소 냉전, 베트남전 등 구체적인 역사를 배경으로 한 경우도 있지만 그렇지 않다 해도 슈퍼히어로의 국적은 분명 미국이다. 박민규의 소설 <지구영웅전설>이 묘사한 대로 바나나맨인 우리는 어린 시절부터 그걸 뼛속 깊이 각인하며 자랐다. 몇달 전 <씨네21>이 지금 미국영화의 진화에 관한 연속특집을 한 것과 지금 슈퍼히어로 영화에 관한 특집판을 내는 것은 무관하지 않다. 슈퍼히어로 영화는 지금 미국영화에서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와 <데어 윌 비 블러드> 반대편에 있는 두 번째 얼굴이다.
영화학자들은 장르의 기원을 신화에서 찾는다. 신화와 마찬가지로 반복되는 이야기의 패턴이기 때문이다. 인류는 공포와 불안, 대립과 갈등을 진정시키는 수단으로 특정한 이야기를 반복해왔다. 신화와 전설은 그렇게 시작해서 도덕과 문명의 발전에 따라 외양을 바꿔가며 계속 이어졌다. 영화에서 장르는 그처럼 바뀐 외양에도 변치 않고 남아 있는 이야기의 패턴과 표식이다. 슈퍼히어로 장르도 그렇다. 고대 그리스 신화가 올림포스산에 인간을 닮은 신들이 살았다고 말하는 것과 지금 우리 주변에 초능력자들이 산다고 믿는 것은 동떨어진 얘기가 아니다. 자연의 특성을 인격화한 수많은 그리스의 신들은 오늘날 슈퍼히어로의 원형에 해당할 것이다. <스파이더 맨> <엑스맨> <배트맨> 등 많은 슈퍼히어로들이 자연현상의 특징에서 슈퍼파워를 빌려왔다. 그런가 하면 <슈퍼맨>은 서구사회의 또 다른 핵심이라 할 성서의 메시아 이야기에 뿌리를 두고 있다. 미국의 신화인 슈퍼히어로가 현대의 신화로 받아들여지는 데는 이처럼 이야기의 뿌리가 널리 깊이 퍼져 있기 때문일 것이다.
물론 원형만으로 특정 장르의 번영을 설명할 순 없다. 슈퍼히어로물이 현대의 신화가 되는 데는 현실적인 배경이 필수적이었다. <엑스맨>은 말콤X와 마틴 루터 킹으로 대비되는 흑인민권운동의 역사를 새겨넣었고 <아이언맨>은 베트남전과 아프가니스탄전을 영화의 배경에 차용했다. <스파이더 맨>이 성장영화에서, <배트맨>이 하드보일드 탐정영화에서 이야기의 현실성을 높이는 비결을 훔쳐온 것도 이 장르가 확산되는 데 큰 기여를 했다. TV애니메이션이나 조악한 특수효과의 드라마에서 블록버스터로 변신하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리긴 했지만 이 장르는 특수효과의 발전과 더불어 지금 황금기를 맞고 있다. 우리는 이번호에서 지금까지 슈퍼히어로 장르가 걸어온 길을 되짚었고 캐릭터의 개성을 뜯어봤으며 영화 속에 감춰진 정치적 무의식을 들여다봤다. 지금의 과학으로 실현 가능한 일이 무엇인지를 검토하는 동시에 슈퍼히어로에 관한 콩트와 에세이도 펼쳐 보인다. 현대 대중문화에서 슈퍼히어로가 차지한 위치를 다양한 각도에서 면밀히 살펴볼 기회가 될 거라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