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훈 통상교섭본부장의 별명은 ‘검투사’(라고 한)다. 2007년 6월 한-미 FTA 협상이 타결된 직후 보수언론들이 일제히 그의 별명이 검투사라고 보도했다. 죽을 각오로 협상에 임했다는 뜻이겠지. 90년대 말에 외교통상부 출입하다 몇번 김 본부장을 만난 적이 있다. 당시 별명은 ‘무사’였다. 날카롭게 올라간 눈매와 깡마른 얼굴상 때문이었다.
근데 6월12일 미국산 쇠고기 추가협상을 위해 미국으로 간다는 그의 얼굴에 검투사나 무사의 ‘필’은 없었다. 담판 지으러 가기보다는 애걸하러 가는 사람처럼 보였다. 기자들의 쏟아지는 질문에도 10분 만에 황급히 자리를 떴다.
포털 다음의 이날 ‘이슈 검색어’ 순위 25권 안에 쇠고기 추가협상에 대한 내용은 하나도 없었다. ‘김종훈’도, ‘쇠고기’도, ‘추가협상’도 없었다. 포털 네이버 인기검색어 30위권 안에도 들지 못했다. 누리꾼은 이렇게 이날 정부의 발표를 한마디로 ‘쌩깠다’. ‘재협상’이란 단어가 빠진 정부 발표는 관심도 없다는 뜻이다.
민간 차원에서 30개월령 이상 쇠고기를 자율규제한다는 정부 대책이 나왔을 때 광화문에 있던 한 시민은 “우리가 그런 발표 들으려고 한달간 촛불을 든 줄 아냐”고 목소리를 높였다. 촛불은 더 거세게 타올랐다.
이날 ‘토론의 성지’라고 불리는 다음 아고라의 대문에 걸린 글의 제목은 “추가협상 발표, 대통령은 국민을 버렸나”였다. 이 글을 쓴 ‘천국문지기’는 재협상을 하면 국가신인도가 떨어진다고 했는데, 신인도가 떨어지는 것은 대한민국이 아니라 잘못된 쇠고기 협상을 한 이명박 정부라고 했다.
정부는 일관되게 대외신인도 하락과 그로 인한 경제적 손실(통상마찰과 무역보복) 가능성을 들어 재협상은 안 된다고 해왔다. 근데 이명박 정부는 국민과 청와대 사이의 대내 신인도 하락과 그로 인한 엄청난 손실 가능성은 안 보이나보다. 이런 식의 소통이라면 이명박 대통령 지지율이 다시 뛸 가능성은 없다. 10%와 20%를 오가는 지지율로는 어떤 정책도 성공하지 못한다. “2MB는 아무것도 하지마.” 광화문 촛불문화제에 등장한 이런 구호가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경제 회생? 꿈도 못 꿀 일이다. 대통령은 오리(요즘은 ‘어얼리덕’이라고 한다지)를 넘어 식물단계로 갈지도 모른다. 미국과 국민 사이에서 대통령은 어디를 선택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