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40년대 말, 1950년대 초에 윌리엄 클라인이 페르낭 레제, 알렉산더 리버먼을 만나지 못했다면 화가이자 사진작가로서 그의 경력은 어떻게 되었을까? 어떻게든 그는 그림을 그리고 사진을 찍었을 게다. 그렇다면 1950년대 중반, 그가 크리스 마르케를 못 만났다면? 클라인의 영화인생은 없었을지도 모른다. 그 유명한 사진집 <뉴욕>에 실릴 사진들 덕택에 마르케와 만난 클라인은 ‘좌안파’의 인물들과 친분을 쌓는다. 그들의 도움으로 팝 필름의 시조인 <환한 브로드웨이>(1958)를 찍었고, 루이 말의 <지하철의 아이>(1960)의 미술을 맡았으며, 마르케의 <환송대>(1962)에 출연했는가 하면, 요리스 이벤스, 알랭 레네, 장 뤽 고다르 등과 <베트남에서 멀리 떨어져>(1967)에 참여했다. 좌안파의 정치 성향과 실험적 스타일로부터 영향을 받은 클라인은 몇편의 다큐멘터리로만 대중에게 알려져왔는데, <윌리엄 클라인 작품집>은 그의 극영화가 얼마나 신선하고 흥미로운지 일깨워준다. <보그>의 사진작가로 활동한 경력을 살려낸 <폴리 마구, 당신은 누군가요?>는 패션산업에 대한 혐오와 미디어를 향한 비평과 달콤쌉쌀한 로맨스가 뒤섞인 기이한 동화다(엔딩 크레딧은 이 영화가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의 다른 버전임을 밝힌다). <미스터 프리덤>은 공산주의에 물든 프랑스를 구하려는 우스꽝스런 미국 영웅을 빌려 미국의 제국주의, 호전적인 애국주의, 경제적 우위의 야망을 신랄하게 비판한 작품이다. 백인 중산층 부부가 미래의 도시와 인간을 연구하는 정부 실험에 참가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인 <실험용 부부>는 사생활과 자유에 대한 공권력의 침해, 공공의 선을 빌미로 한 전체주의, 안락한 삶에 젖은 중산층을 싸잡아 공격한다. <실험용 부부>의 미래가 2000년으로 설정된 것에서 보듯, 클라인의 세 영화는 21세기의 문화와 정치와 생활을 놀라울 만치 예언하고 있다. 문화는 팔고 사는 대상이 되었고, 정치는 폭력적인 쇼를 계속하며, 생활은 끝없는 소비의 욕망으로 채워진다. 그리고 이러한 사회적 논평과 충돌하는 시각적 향연, 풍성한 스타일은 클라인 영화의 판타지를 특징짓는다. 당신은 누벨바그, 아방가르드, 시네마 베리테, 팝 아트, 코미디, 멜로드라마, 다큐멘터리 중 어떤 이름을 들이댈지 망설일 것이며, <섹스 앤 더 시티> <슈퍼맨> <트루먼쇼>보다 족히 30, 40년 진보된 형태에 경배를 올리게 될 것이다. 여기에 ‘색다른 모습의 델핀 셰리그, 필립 누아레, 세르주 갱스부르, 앙드레 뒤솔리에’라는 뜻밖의 즐거움까지! <윌리엄 클라인 작품집>은 1년 전에 소개한 ‘이클립스 시리즈’의 9번째 출시작이다. 시리즈의 단점은 여전해서 부록이라곤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