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Skip to contents]
HOME > Magazine > 칼럼 > 듀나의 배우스케치
[듀나의 배우스케치] 해리슨 포드

막 <인디아나 존스: 크리스탈 해골의 왕국>을 보고 왔습니다. 이 영화에 대해 뭐라고 말해야 할지 모르겠군요. 이건 가장 훌륭한 인디아나 존스 영화는 아닙니다. 가끔 오리지널 3부작의 패러디처럼 보이기도 하죠. 전 루카스와 스필버그가 십 몇년 동안 기다리고 골랐다는 시나리오가 그렇게 좋다고 생각하지도 않습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해리슨 포드가 인디아나 존스의 모자를 쓰고 인디아나 존스로 뛰어다니는 걸 보는 건 그냥 좋습니다. 왜냐하면… 그는 인디아나 존스이고 해리슨 포드니까요. 이게 충분한 설명이 못 된다면 전 여기서 이야기를 중단할 수밖에 없습니다.

한동안 우린 제대로 된 영화 스타로서의 해리슨 포드를 보지 못했습니다. 최근에 그가 출연한 <파이어월>이나 <호미사이드> 같은 영화들을 보시죠. 과연 그런 영화들이 그의 무게에 어울립니까? 예순을 넘긴 뒤로 그의 커리어는 거의 정지된 것 같았습니다. 해리슨 포드의 팬들에게 유일한 희망은 <인디아나 존스>였지요. 그 영화만이 그의 스타로서의 가치가 여전하다는 걸 입증해줄 것 같았습니다. 실제로도 그렇고요.

할리우드 스타로서 해리슨 포드는 활동영역이 좁은 사람입니다. 그가 하는 역할은 대부분 뻔해요. 복잡하지 않은 액션 주인공이죠. 남자 냄새를 풀풀 풍기지만 괜한 폼에 사로잡혀 있지 않고 유머감각도 꽤 있으며 조금은 어린애 같고 조금은 야비하고 조금은 유치하기도 하지만 결코 궁극적인 타락에 빠지지 않는 인물입니다. 이 배합은 캐릭터마다 조금씩 다릅니다. 인디아나 존스와 잭 라이언을 같은 선에 놓고 볼 수는 없죠. 하지만 그의 매력이 가장 잘 살아날 때는 이 모든 것들이 빠짐없이 빛을 낼 때입니다. 그리고 인디아나 존스처럼 그런 그의 이미지에 딱 맞아떨어지는 캐릭터는 없습니다. 전 그가 출연한 잭 라이언 영화들을 좋아하지만 그게 포드의 매력을 최대한으로 살린 캐릭터가 아니라는 주장엔 동의할 수밖에 없습니다. 알렉 볼드윈과 벤 애플렉도 할 수 있는 역을 꼭 해리슨 포드가 해야 할 필요가 있을까요?

이건 그가 연기폭이 좁다는 뜻은 아닙니다. 알 파치노나 로버트 드 니로 수준은 아니지만 배우로서 그는 한 솔로와 인디아나 존스를 제외하고도 꽤 많은 것들을 할 수 있습니다. 1980년대 중반에 그는 정말 진지하게 그걸 증명하려 했습니다. <위트니스>나 <모스키토 코스트> 같은 피터 위어의 영화들에서 그는 연기파 배우였고 <위트니스>로는 아카데미 남우주연상 후보에도 올랐지요. 상은 못 받았지만 전 아직도 당시 기뻐하던 해리슨 포드의 팬들의 얼굴을 기억합니다. “봐, 그도 마음만 먹으면 연기파 배우로 성공할 수 있다고.” 슬프게도 그건 그의 마지막 후보자 지명이었습니다.

해리슨 포드를 다재다능한 연기파 배우로 기억하는 사람들은 없습니다. <위트니스>는 좋은 영화였지만 누가 그 작품을 포드의 대표작으로 보나요? <워킹 걸>에서 그는 썩 좋은 조연이었지만 그렇다고 그를 조연배우로 보는 건 어렵습니다(이건 특히 치명적입니다. 나이 든 배우들의 경력에 조연은 주연보다 더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해리슨 포드가 아무리 자신의 영역을 넓히려고 해도 스타로서의 이미지는 그의 행보를 막습니다. 그는 어쩔 수 없이 늘 하던 걸 해야 합니다. 배우로서는 짜증나는 일이지만 어쩔 수 없습니다. 그게 바로 스타로서의 그의 역할이니까요. 저보고 묻는다면 포드에겐 연기보다 스타로서의 위치가 더 중요하다고 하겠습니다. 세상엔 연기파 배우들이 넘쳐납니다. 하지만 60대 중반에도 여전히 전세계인들의 공감을 얻고 향수를 자극하는 스타들은 희귀합니다. 그건 충분히 짊어질 가치가 있는 짐입니다.

관련인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