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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영화만들기에 도전하는 독립영화제작 워크숍 현장 밀착취재 [2]
장영엽 사진 이혜정 2008-06-12

셋째 날, 5월23일 금요일 _ 이제는 실전이다!

오후 두시, 지하철 5호선 종착역인 방화역에서 정 감독 일행과 만났다. 카메라를 비롯해 온갖 촬영 도구를 한 가득 짊어지고 온 이들은 지친 기색도 없다. 일행의 말대로 “감독님 집 밥”의 힘 때문일까? “소매치기 엄마에게 훈련받는 장면을 감독님 집에서 찍었는데, 밥을 두끼나 먹고 왔어요. 아침엔 해물탕 점심엔 불고기, 진짜 맛있던데요.” 오전에는 조원 모두가 골고루 돌아가며 촬영했다. 실전에서 직접 카메라를 잡아본 소감은? “처음엔 꼭 촬영이 아니라도 아무 거나 시키면 열심히 하겠다는 마음이었는데, 역시 카메라는 만져만 봐도 설레더라고요.” 성기혜씨가 말한다. 그 옆에서는 배우를 맡은 최성민씨가 지갑을 소매치기 당하는 장면을 연습 중이다. 정병길 감독과의 인연으로 <우린 액션배우다>의 두 배우 신성일, 김경민이 소매치기로 우정출연했다. 눈빛마저 노련한 이들과 비교하자면 최성민씨는 아직 서툴다. “제가 지갑을 뺄 때까지 주머니를 쳐다보면 안 돼요.” 거듭 연습을 해보지만 능청스러운 연기가 못내 아쉽다. 하지만 더이상 연습할 시간은 없다. 열차가 들어오고 있었다.

지하철이 승강장에 들어서자 일행이 서둘러 짐을 풀기 시작한다. 허락을 받지 않고 짧은 시간 내에 ‘몰래 촬영’하는 것이라 여유를 부릴 새가 없다. 이곳에서 촬영해야 할 것은 소매치기 A와 B가 지하철 승객의 지갑을 훔쳐 달아나는 장면. 이를 알아차린 승객이 A를 뒤쫓는 추격장면도 포함되어 있다. 곧이어 지하철 문이 열리자 촬영 장비를 든 정 감독 일행은 당당히 그 안으로 입성했다.

문이 닫히자 전쟁이 시작됐다. 과장된 표현이 아니다. 정 감독이 6mm 카메라를 신속하게 조립하는 모습은 적군을 발견한 저격수가 총을 장전하는 모습을 연상케 했다. 조원들은 각자 맡은 일을 충실히 수행하기 위해 일사불란하게 움직였다. 감독이 “액션!”을 외치자 배우들의 표정이 진지해진다. 하지만 지갑이 스웨터에서 잘 빠지지 않아 첫 번째 촬영은 실패. 역이 가까워 올 때마다 다급해지는 건 조원들이다. 성기혜씨, 박지연씨, 김정현씨는 ‘촬영 중’이란 팻말을 들고 지하철이 역에 멈출 때마다 “죄송합니다. 촬영이 있어서요”라고 외치며 일행이 있는 곳으로 들어오려는 승객에게 양해를 구했다. 그런데 또 다른 문제가 생겼다. 전철이 종착역에 도착할 때마다 운전기사가 바뀌어 들어오는 것. 누군가 망을 보고 있다가 “아저씨 오신다!”고 외치면 촬영하다 말고 장비를 통 속에 숨기는 일이 반복됐다. ‘학생들은 왜 안 내리나’라며 의혹의 눈초리를 거두지 않는 운전기사 아저씨를 보내고 나면 전쟁은 다시 시작됐다. 이런 식으로 약 열명의 기사를 보냈다.

지하철 촬영에 익숙해져 여유가 생기자 한영준씨가 카메라를 잡았다. 찍어야 할 것은 여고생이 소매치기에게 가방을 빼앗기는 장면. 연기가 처음이라던 이해인씨는 졸고 있는 모습을 너무 ‘리얼’하게 소화해 조원들로부터 “진짜 자는 줄 알았다“는 평을 들었다. 안전한 구도를 선호하던 정병길 감독과 달리 한영준씨는 여러 각도에서 촬영을 시도했다. 자세는 다소 불안정했지만 촬영 수업 때 배운 기법을 충실히 활용하는 듯했다.

장소를 옮기고, 장면이 바뀔 때마다 점점 촬영에 익숙해지는 조원들의 모습을 관찰할 수 있었다. 실수를 하지 않았다는 게 아니다. 촬영에 어려움이 생겼을 때 더 신속하게 대처하는 방법을 알게 되었다는 말이다. 신촌 굴다리 밑에서 촬영할 때, 조원들은 ‘액티브한 효과’를 위해 촬영자가 오토바이 뒤에 타고 달리면서 찍는 장면을 시도했다. 하지만 오토바이의 자리가 좁고 위험해보이자 카메라를 뒷좌석에 테이프로 고정시키는 센스를 발휘했다. 골목길 촬영에서는 해가 저물어 주변이 어두워지자 오토바이 헤드라이트를 조명 대신 사용하기도. 누군가가 “오늘 집에 가면 다들 쓰러지겠다”고 말할 정도로 지친 하루였음에도 마지막까지 여고생의 일기장에 넣을 단어 하나를 고심하는 걸 보니 끈기도 생긴 것 같다. 여러 가지 디테일을 논의하는 그들을 뒤로한 채 발걸음을 옮겼다.

넷째 날, 5월24일 토요일 _ 에필로그

미디액트에서 모둠별로 만든 다섯개의 단편영화 시사가 있는 날, 시사실 근처 라운지에서 정병길 감독 일행을 만났다. “다 같이 밤새우고 편집한 다음, 오후에 잠깐 눈 붙이고 다시 나왔다”고들 하지만 모든 작업을 마친 그들의 표정은 여유로워 보였다. 하지만 다른 조는 어떻게 만들었는지 몹시 궁금한 눈치다. 막간을 틈타 소감을 물었다. “촬영이 끝났다고 안심했는데 편집이 제일 어려웠어요. 나중에 또 영화를 만들게 된다면 편집은 절대 남 시키지 않을 겁니다.”(박지연) “촬영한 장면들을 어떻게 살릴까만 생각했지 어떤 것을 버려야 할지는 생각해보지 않은 것 같아요.”(성기혜) “한정된 시간 안에 촬영하는 게 너무 힘들었습니다. 시간이 주어졌다면 좀더 좋은 장면을 찍을 수 있었다는 미련이 계속 남더라고요.”(최성민) 이들의 말을 들으니 ‘많이 부딪쳐야 많이 얻는다’던 정병길 감독의 전략은 성공한 것으로 보인다. 결과물은 어떻냐고? ‘인디포럼2008’의 폐막식을 통해 직접 확인하시길. 힌트를 드리자면, 여러분은 지금까지 재능있는 신인감독들의 탄생을 직접 목격한 것인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