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춘예찬> <경숙이, 경숙이 아버지> <선착장에서> 등 내놓는 작품마다 화제를 일으킨 박근형 연출가의 신작. 그야말로 극본의 힘을 강력하게 느끼게 하는 연극이다. “부동산이 전공”이라는 엄 사장. 울릉도에서 땅을 굴려 돈을 번 그는 군대에서 모시던 “큰형님”의 SOS를 듣고 포항으로 향한다. 포항 요식업 중앙회 회장으로 출마한 자신을 위해 선거운동을 해달라는 것. 하지만 아무리 뛰어도 지지율이 오르지 않자 엄 사장은 급기야 라이벌 후보의 아들을 납치하려는 계획을 짜기 시작한다. 작전 본부는 항구다방. 비밀 요원은 그의 전화 한통에 하던 일도 내팽개치고 달려온 두 아우, 영필과 성효. 게다가 울릉도에서 포항으로 발령받은 김 경사와 그의 부하직원들, 김 경사의 아내(인 듯 보이나 혼인신고나 제대로 올렸을지 의심스러운) 황 마담까지 그를 위해 몸과 마음을 바치니 미션의 성공은 식은 죽 먹기가 아닐까 싶지만 포부 당당한 그 앞에 얼굴조차 잊은 아들, 엄고수가 나타나면서 위태로운 기색이 감돈다. 희극과 비극을 적절히 버무린 솜씨도 솜씨이거니와 비열한 욕쟁이에다 때론 너무 바보 같아 외려 인간적인 캐릭터들이 벌이는 좌충우돌 소동극이 제 맛이다. 특히, 오토바이 위에서 아이를 낳고 싶다는 황 마담의 “급진적”인 고백을 포함해 칼칼한 경상도 사투리가 가미된 몇몇 대사는 놀라울 정도로 웃기다. <선착장에서>의 속편 격이라는 이 작품은 군복무를 마친 고수의 복귀작이자 첫 연극데뷔작으로 눈길을 끌기도 했다. 엄효섭, 김영필, 황영희 등의 열연을 눈여겨보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