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장르 소설 창작이 점점 활발해지고 있다. 한국 무협, 판타지, 로맨스 소설은 이미 해외 장르 소설 못지않은 물량공세가 이어진 지 오래고 스타 작가들도 생겼다. 공포, SF는 창작집단을 중심으로 신인작가를 꾸준히 배출하고 있다. 추리, 스릴러 소설의 경우 해외 작품들에 비해 한국 창작소설의 인지도가 약했던 게 사실인데, 황금가지의 <한국 추리 스릴러 단편선>은 다양한 시도를 통해 한국 추리, 스릴러의 존재감을 알리는 책이다. 류삼의 <싱크홀>은 안정적인 필력과 긴박한 구성이 돋보이는 스릴러다. 청각장애를 겪는 아들을 혼자 키우는 혜원은 폭우 속에서 자동차 사고를 겪는다. 모자에게 도움의 손길을 내민 성욱이 살인자의 얼굴을 드러내면서 펼쳐지는 서스펜스가 군더더기 없이 펼쳐진다. 정명섭의 <불의 살인>은 고구려를 무대로 한 역사추리물. 선의와 악의가 우연으로 얽혀 벌어지는 참극을 안정적으로 풀어냈다. 김유철의 <암살>은 제주 4·3사태를 무대로 군 지휘관 암살사건을 다뤘는데, 역사소설 특유의 묵직한 뒷맛이 인상적이다. 밀실트릭을 퀴즈 형식으로 다룬 이대환의 <알리바바의 알리바이와 불가사의한 불가사리>는 가능한 결말의 가능성을 두 가지 제시한 채 끝냄으로써 오히려 독자의 선택을 유도하는 재치있는 작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