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훌륭한 수련을 거친 고수의 손길 <쿵푸팬더>
문석 2008-06-04

명랑쾌활 지수 ★★★★ 쿵후액션 지수 ★★★☆ 이야기 예측가능 지수 ★★★★

하루에 22시간씩 자야 그 둥글둥글한 몸을 유지할 수 있다는 판다가 쿵후를 한다니. <쿵푸팬더>는 게으르고 느리기로 유명한 판다가 물살을 출렁이며 무공을 발휘한다는 기본 설정만으로도 입가에 웃음을 장전하게 하는 영화다. 누구나 짐작할 수 있을 정도의 단순한 이야기와 지극히 만화적인 캐릭터들이 스크린 위를 뛰어놀고 있다고 해서 이 영화의 공력을 무시해서는 안 된다. 매 장면이 흥미롭고 주기적으로 큰 웃음을 주는데다 나름의 교훈까지 제시하는 이 가족영화는 훌륭한 수련을 거친 고수의 손길을 느끼게 한다.

포(잭 블랙)는 이상과 현실의 괴리 때문에 괴로워하는 판다. 그의 꿈은 쿵후의 최고 달인이 되는 것이지만 한심한 몸매와 빵점짜리 운동신경은 그를 좌절하게 한다. 게다가 국숫집을 운영하는 아버지는 ‘우리 피에는 육수가 흐르고 있다’면서 포에게 가업을 물려주려 한다. 그런 그에게 생각지도 못했던 기회가 찾아온다. 쿵후세계 최고 비법이 적혀 있는 용 문서를 물려받을 후계자를 선발하는 날, 구경차 이곳을 찾았던 포가 덜컥 후계자로 선정된 것이다. 사부인 시푸(더스틴 호프먼)는 물론이고 쿵후의 달인들인 ‘무적의 5인방’은 이에 반발하고, 가장 유력한 후보였던 타이그리스(안젤리나 졸리)는 포를 특별히 더 냉정하게 대한다. <쿵푸팬더>가 본격적으로 긴장감을 갖게 되는 순간은 자신이 용 문서의 전수자가 돼야 한다고 생각한, 온갖 악행을 저질렀던 타이렁이 감옥을 탈출하면서다. 강력한 내공을 갖춘 무적의 5인방조차 타이렁을 맞상대하기에는 무리인 까닭에 포는 단기속성 코스로 쿵후를 수련해 타이렁을 물리쳐야 하는 운명에 처한다.

진지한 눈으로 본다면 <쿵푸팬더>는 여러 가지 삶의 문제를 담고 있는 영화다. 머나먼 꿈과 안정된 현실 사이의 고민뿐 아니라 하고 싶은 일이 있다면 재능이 없(는 듯 보이)더라도 노력을 해야 하는가, 난관을 한방에 해결해주는 묘수는 존재하는가, 예상치 못했던 기회를 어떻게 맞이해야 하는가 등 무게 자체로 보면 만만치 않은 인생사의 과제들은 가족영화답게 유쾌하고 행복한 결말로 귀결되지만 그 여운은 아련하게 남는다. 이 영화가 성인관객에게도 그닥 유치하게 다가오지 않는 것은 만화 특유의 과장 속에서도 지극히 현실적인 일상의 고민을 담고 있기 때문이다.

물론 인생의 진리를 알기 위해 이 영화를 볼 리는 없는 일. 뭐니뭐니해도 <쿵푸팬더>의 백미는 즐거움이다. 실제 동물을 통해 재현되는 호권(虎拳), 사권(蛇拳), 학권(鶴拳) 등도 색다른 재미를 부여하지만 튀어나온 배를 실룩거리며 계단을 오르락내리거나 짧은 다리로 어수룩하게 쿵후 동작을 펼치는 포의 ‘몸개그’는 압권이다. 특히 시푸가 포의 식탐을 이용해 맹훈련을 시키는 시퀀스는 최근의 그 어떤 코미디도 이뤄내지 못한 웃음의 초절정이다. 포의 ‘출생의 비밀’이 밝혀질 듯하다가 엉뚱하게 새버리는 장면 또한 코미디의 내공을 느끼게 한다. <슈렉>이나 <샤크> 같은 최근 애니메이션처럼 대중문화나 사회적 이슈를 패러디하는 대신 쿵후라는 세계의 본령에 접근하려 했다는 점은 시류를 좇지 않은 <쿵푸팬더>만의 특이점이다. 스스로 쿵후 동작을 배운 애니메이터들에 의해 묘사돼 더 실감나는 액션장면이나 잭 블랙, 더스틴 호프먼 등의 절묘한 목소리 연기 또한 영화의 재미를 배가한다. 드림웍스 애니메이션이나 제작진이 속편 계획을 갖고 있는지는 확실치 않지만, 우여곡절 끝에 탄생한 이 뚱뚱보 판다 영웅의 모험담은 앞으로 더 흥미로워질지도 모른다.

tip/ 누가 봐도 명백하지만 중국의 전통무예인 쿵후를 소재로 삼았고, 중국에서만 살고 있는 판다를 주인공을 내세운 <쿵푸팬더>는 베이징올림픽을 겨냥한 기획영화다. 이 영화 속 캐릭터들이 올림픽에 출전한 모습을 담은 삼성전자의 CF만 보더라도 이 애니메이션의 기획력과 효용성은 짐작할 수 있다. 재주는 판다가 넘고 돈은 할리우드가 가져가는 셈이다.

<쿵푸팬더> 속의 무술

<쿵푸팬더>는 비교적 쿵후의 전통에 정확하게 다가가려 한 영화다. 이 영화에서 묘사되는 쿵후 권법은 ‘무적의 5인방’이 펼치는 다섯 가지다. 타이그리스(호랑이)의 호권, 몽키(원숭이·성룡)의 후권(猴拳), 바이퍼(살무사·루시 리우)의 사권, 크레인(학·데이비드 크로스)의 학권, 맨티스(사마귀·세스 로건)의 당랑권(螳螂拳)이 그것. 아시아의 관점으로 봤을 때 이들 다섯 권법은 ‘소림오권’을 착각한 결과가 아닌가 싶기도 한데, 동물의 동작을 본떠 소림사에서 발달한 다섯 가지의 권법은 호권, 사권, 학권 외에 용권(龍拳)과 표권(豹拳)이다. 당랑권은 17세기부터 산둥성을 중심으로 발달해온 권법이며, 후권은 소림사에서 시작된 무술 중 하나이지만 소림오권으로 발전하지는 못했다. 동물에게서 착안한 권법은 상형권이라고 부르는데 독수리에게서 영향을 받은 응조권(鷹爪拳) 등도 있다. 영화에 등장하는 판다, 너구리, 거북 등의 권법은 실제로 존재하지 않는 상상력의 산물이다.

목소리 연기자의 캐스팅은 각 권법과 동물에 걸맞은 느낌을 준다. 판다 포와 잭 블랙의 비슷한 체형은 두말할 나위 없고, 시푸는 더스틴 호프먼의 얼굴 특징을 담고 있으며, 안젤리나 졸리 또한 등에 커다란 호랑이 문신을 새기고 있다는 점에서 호랑이와 어울리는 면모를 갖췄다. “나는 쿵후와 코미디를 접목해왔다. 몽키라는 캐릭터는 작가와 애니메이터들이 내 움직임이나 성격, 그리고 모든 것을 지켜본 듯한 느낌을 준다”는 성룡 또한 썩 어울리는 캐스팅.

제작진들은 실감나는 쿵후 동작을 묘사하기 위해 직접 쿵후를 배우기도 했다. 이를 위해 에릭 첸이라는 우슈 달인이 초빙돼 두 감독을 비롯한 애니메이터들에게 한수를 사사했다. 존 스티븐슨 감독은 직접 쿵후를 익힌 것에 대해 “실제로 우리처럼 쿵후가 어울리지 않는 포에게 쿵후를 배운다는 것이 어떤 느낌일지를 알아야 했다”고 설명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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