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8년 당시 외교통상부를 출입하던 때다. 고위 외교관들과의 사석에서 정상회담에서 있었던 전직 대통령 YS의 ‘기행’에 대한 ‘뒷담화’를 심심찮게 들을 수 있었다. “중간선거 패배로 ‘여소야대’ 상황에 놓인 빌 클린턴 당시 미국 대통령에게 ‘공화당에서 몇명만 데려오면 되는데 뭘 고민하냐’고 하더라”, “한-독 정상회담 자리에서는 헬무트 콜 당시 독일 총리에게 비만의 이유를 묻더라…”. 가히 ‘기행의 달인’이었다. YS의 이런 기행에, 사사건건 의견대립을 빚는 외교부와 청와대 외교안보수석과의 의견 충돌로 문민정부의 외교는 최악이었다.
이명박 대통령이 5월27일 중국 방문으로, 취임 3개월 만에 이른바 한-중-일 ‘3강 정상회담’을 마쳤다. 근데 중국 외교부의 결례가 심상찮다. 이명박 대통령이 중국에 도착하던 그날까지, 중국 외교부 홈페이지에는 현직 한국 대통령은 노무현이라고 되어 있었다. 친강(秦剛) 외교부 대변인도 이 대통령의 방중 당일 “한·미 군사동맹은 지나간 역사의 산물”이라고 표현했다. 이 대통령이 도착한 중국 공항에는 신정승 신임 주중대사가 영접을 나가지 못했다. 중국 정부의 신임장을 제정받지 못했기 때문이다. 중국의 관영텔레비전은 이 대통령의 베이징대학교 연설 생방송을 거부했다. 이 정도면 결례를 넘어 모욕이다.
일본은 더 심했다. 한·일 정상회담 직후엔 “과거에 얽매여 미래로 가는 데 지장을 받아서는 안 된다”고 하고, 친일인명사전 편찬에 대해 “우리가 일본을 용서하는데”라고 흥분했던 이명박 대통령에게 ‘독도 영유권 주장’으로 답했다.
정부가 5월29일 쇠고기 위생조건에 대한 고시를 강행했다. 애초 고시예정일이던 5월27일에서 사흘 연기된 것이다. 미 축산육우협회가 ‘환상적’(fantastic)이라고 격찬했던 쇠고기 협상 결과로 지지율이 23%까지 떨어진 이명박 정부에게 미국 정부는 ‘고시 연기는 유감’이라고 연일 압력을 넣었다.
어떻게 이렇게 철저히 뒤통수를 맞을 수 있을까. 이명박 대통령이 <개그콘서트> ‘달인’ 코너에 출연하면, “지난 3개월간 각국 정상회담에서 뒤통수만 맞아오신 ‘뒤빡’ 이명박 선생님을 모셨습니다”란 소개말이 나오지 않을까.
이명박 대통령은 성공한 기업 CEO 출신이라고 한다. 기업 경영의 제1조는 ‘손실의 최소화와 이익의 극대화’다. 이익을 극대화할 CEO의 공력은 어디로 갔을까. 왜 우리 눈엔 손실만 보이는 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