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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듀나의 배우스케치] 피터 딘클리지 (Peter Dinklage)

사람들이 자신이 가진 신체적 특징만 본다는 건 짜증나는 일이 아닙니까? 우린 어쩔 수 없이 자신의 육체에 종속되어 있지만 그렇다고 그게 우리의 전부일 수는 없습니다. 아무리 단순한 사람이라도 그럴 수는 없지요.

그럼에도 사람들은 종종 자신의 그 특징 안에 갇힙니다. 특히 이미지가 중요한 배우들은 그렇지요. 우린 존 웨인이나 마릴린 먼로에 대한 하나의 상을 갖고 있고 그들이 거기에서 벗어나면 당황합니다. 그래서 배우들이 종종 자신의 외모를 일부러 망쳐가며 새로운 길을 찾으려 하는 거겠죠. 샤를리즈 테론이나 니콜 키드먼처럼요.

그러나 어떤 분장을 해도 자신의 외모에서 탈출할 수 없고 늘 순전히 외모 때문에 캐스팅되는 배우들이 있습니다. 피터 딘클리지가 바로 그런 사람들 중 한명이죠. 딘클리지는 맹렬하게 활동하는 전문배우지만 그의 역은 늘 같습니다. 바로 왜소증 환자죠. 할리우드영화에 얼굴이 어느 정도 알려진 연기파 왜소증 배우가 필요하면 캐스팅 디렉터는 그에게 연락을 할 것입니다. 그가 다른 어떤 역을 맡는다는 건 상상할 수 없죠.

그러나 왜소증 환자라는 위치가 무조건 배우로서의 가능성을 막기만 하는 건 아닙니다. 그런 핸디캡에도 불구하고 씩씩하게 활동하는 전문배우들은 딘클리지 말고도 많죠. 마이클 J. 앤더슨이나 워윅 데이비스 같은 사람들 말이죠. 그들은 모두 자기 개성이 분명한 배우들로 왜소증이라는 명칭 하나로 쉽게 묶을 수 있는 사람들이 아닙니다.

딘클리지는 그중에서도 가장 현실세계에 닿아 있는 사람입니다. 일단 신체적으로 비교적 정상에 가깝죠. 그에겐 마이클 J. 앤더슨이 가진 괴기한 느낌은 없습니다. 그냥 조금 우울하고 심술궂은 현대인처럼 보여요. 단지 키가 많이 작을 뿐이죠. 그가 <스테이션 에이전트>의 주인공으로 편안하게 안착할 수 있었던 이유도 그런 낯선 느낌이 적기 때문일 겁니다. ‘난쟁이’라는 딱지가 떨어져나가는 시간이 비교적 짧아요. 그렇기 때문에 관객은 쉽게 드라마에 몰입할 수 있고 그가 연기하는 캐릭터를 그냥 외롭고 까칠한 보통 사람으로 받아들일 수 있습니다. 그 외로움의 원인은 여전히 신체적 한계지만 원인이 무엇이건 외로움이란 우리 모두가 공감할 수 있는 감정이거든요.

가끔 그는 그 선을 넘어서기도 합니다. 최근작 <페넬로피>에서 그가 연기한 캐릭터 레몬이 그렇죠. 알다시피 <페넬로피>는 가문의 저주 때문에 돼지코를 하고 태어난 안면기형 환자의 이야기입니다. 영화의 테마도 ‘외모’고요. 그런데 그런 이야기에서 그는 페넬로피의 사진을 찍으려 안달이 난 사진기자로 나온단 말입니다. 영화 내내 그는 자신의 외모에 대해 단 한마디도 하지 않습니다. 그를 ‘난쟁이’라고 부르는 사람도 없고요. 하지만 영화를 보면 안면기형 환자의 사진을 찍으려 발버둥을 치는 그가 영화 내내 자신의 외모에 대해 끊임없이 의식하고 있고 그 핸디캡을 극복하기 위해 필사적으로 노력하는 사람이라는 걸 못 볼 수가 없습니다. 영화에서 마침내 구한 페넬로피의 사진을 받아든 그의 모습은 바로 그렇기 때문에 짠한 구석이 있습니다. 전 페넬로피와 레몬의 이야기가 페넬로피의 로맨스보다 더 좋더군요.

최근 그는 <나니아 연대기: 캐스피언 왕자>에서 무뚝뚝하지만 친절한 난쟁이 트럼프킨을 연기했습니다. 그는 그렇게까지 판타지영화에 자주 출연하는 배우는 아니지만 이런 영화들이 있다는 건 왜소증 배우들에겐 좋은 일입니다. 여전히 그의 키는 작고 ‘난쟁이’로 불리지만, 판타지나 동화 세계에서 ‘난쟁이’라는 건 머리가 금발이거나 눈이 파랗다는 것처럼 일상적인 개성에 불과하니까요. 그런 세계에서 그의 속 깊은 심술궂음은 좀더 깊고 보편적인 의미로 해석될 수 있습니다. <나니아 연대기: 캐스피언 왕자>가 그렇게 깊이있는 영화가 아니라는 건 그래서 조금 슬프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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