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닝타임 대비 음악 나오는 시간 ★★★★ 제작진의 밥 딜런 이해도 ★★★★ 이 영화‘만’으로 밥 딜런을 이해할 수 있는 정도 ★★
밥 딜런을 아시나요. 기타 하나로 시대의 양심을 대변했던 음유시인? 일렉 기타를 집어들자 변절자 소리를 들어야 했던 록가수? 오토바이 사고 이후를 포함하여 50년 가까이 잠적을 반복했던 은둔자? 지면관계상 생략할 수밖에 없지만 모두 다른 정체성을 지닌 그 누군가들? 그의 대표곡(처럼 되어버렸으나 그가 평생 벗어나려 애썼을) <Blowin’ in the Wind> 속 한 구절로 진부하게 대답하자면, ‘친구여, 그건 바람만이 알고 있을 뿐’이다. 그런데 정말 그럴까?
짧은 필모그래피 속 변덕으로 치자면 밥 딜런 뺨 칠 만한 토드 헤인즈의 생각은 좀 달랐다. 그 대답은 인간의 일생 혹은 인간 그 자체를 바라보는 우리의 시선을 조금만 달리하면 얼마든지 정답에 가까워질 수 있다고. 그리고 그는 나이, 외모, 인종, 성별이 다른 여섯 배우를 동원하여 밥 딜런에 대한 일곱개의 초상을 그려냈다. 떠돌이 흑인소년 우디(마커스 칼 프랭클린), 포크계의 스타 잭(크리스천 베일)과 가스펠을 부르는 목사 존(또 크리스천 베일), 잭을 연기하는 영화배우 로비(히스 레저), 기자회견과 공연을 전쟁처럼 치러내는 록가수 쥬드(케이트 블란쳇), 무법자 빌리 더 키드(리처드 기어), 자신을 아르튀르 랭보라고 소개하는 스무살 청년(벤 휘쇼)…. 평론가 로저 에버트의 말을 빌리자면, “밥 딜런의 초상이 아니라 그에 대한 우리의 지각의 초상을 만들었다”.
누군가의 전기영화를 만들었거나, 만들려고 생각했던 거의 모든 감독들은 <아임 낫 데어>를 보며 무릎을 쳤을 것이다. 왜 여태껏 이런 생각을 하지 못했을까. <시민 케인> 이후 숱한 전기물들이 다양한 면모를 지닌 기인을 모델 삼으며 일관성의 신화를 깨기 위해 경주했지만, 저마다 다른 이름을 지닌 캐릭터를 저마다 다른 비중과 형식으로 사용하고 영화의 스타일까지 동원한 경우는 없었다. 21세기식 초상화를 완성하기 위해 헤인즈 자신이 가장 적절한 모델을 찾았던 것은 아닐까 싶을 정도로 절묘하게 맞아떨어지는 포석이다. 아, 혹시나 하는 노파심에 덧붙이자면, 당신이 밥 딜런에 대해 아무것도 아는 바 없더라도 부담없는 일견을 권한다. <아임 낫 데어>는 135분 동안 59곡에 달하는 밥 딜런의 노래를 그의 육성은 물론 후배 가수, 영화 속 배우의 목소리로 감상할 수 있는 매력적이고 도전적인 뮤직비디오로도 손색이 없다.
tip/ <파 프롬 헤븐>에서 헤인즈 감독과 함께한 촬영감독 에드워드 러치맨(<처녀 자살 소동> <켄파크>)은 시대의 기묘한 공기를 예민하게 포착한다. 다양한 스타일과 질감의 화면으로 밥 딜런 육면체를 만들기 위해 감독과 촬영감독은 여러 시대의 영화를 끌어들였다. 케이트 블란쳇의 쥬드는 <8과 1/2>을, 리처드 기어의 빌리는 <태양을 향해 쏴라>를 적극 참고하는 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