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라인 장터 옥션에 들어가 그 유명한 ‘과천 현수막’(광우병 반대 현수막)을 주문했다. 차량용 스티커까지 같이 주는 걸 선택하니 9900원이다(옥션에는 ‘회원 개인정보’부터 과천 현수막까지 참으로 없는 것이 없다. 유출과 판매라는 형태는 다르지만). 정부가 미국산 쇠고기 수입위생 조건 고시를 강행한다고 해서 급히 주문했다. 5월24일에 있을 촛불문화제 참석 때 쓰고, 집 베란다에 내걸어볼 생각이다. 서울 서초구에서는 처음일까?
정치적 견해를 담은 현수막을 집에 걸자는 생각을 굳히기는 쉽지 않았다. 이웃과 모두에게 정치적 ‘커밍아웃’을 하는 행위이기 때문이다. 공소시효가 지나서 밝히건대 90학번인 기자는 짱돌과 ‘꽃병’(화염병) 꽤나 던진 집시법·화염병 특별법 위반 전력을 가지고 있다(그렇다고 과격시위자는 아니었습니다. --;). 당시 집회에선 마스크와 손수건으로 얼굴을 꽁꽁 감추는 것은 필수였다. ‘쌩얼’은 자살행위였다. 교내 게시판에 붙인 대자보도 개인 명의는 늘 익명이었다. 반정부 활동은 언제나 이름을 숨겨야 했다.
지금은 시대가 달라진 것 같다. 경찰청 누리집(웹사이트)의 게시판에 들어가보면 ‘촛불집회 주동자다. 자수한다’, ‘나를 체포하라’는 의견이 수천건이다. 경찰의 촛불문화제에 대한 처벌 방침에 항의하는 목소리다. 여기선 모두가 자신의 주민등록번호와 실명을 ‘쌩얼’로 밝히고 있다. 청와대 국민참여 게시판에 가봐도 자신의 이름을 실명으로 밝힌 ‘쌩얼’의 항의가 줄을 잇고 있다. 10대 중·고등학생부터 60대 장년층까지 세대를 가리지 않는다. 누가 이들에게 이런 용기를 줬을까. 촛불문화제에서 한 참가자가 ‘배후는 바로 민심’이라고 말했다. 지금껏 대한민국 국민들은 정치는 삶과 무관한 것으로 배웠다. 보수언론과 학교가 조장한 결과다. 그런데 노무현 정부를 거치고, 이명박 정부를 겪으면서 깨우치고 있다. 정치가 개인의 삶의 질을 곧바로 규정한다는 것을. 얼마 뒤면, 이명박 대통령이 취임 100일(6월3일)을 맞는다. 지금까지의 이 대통령의 유일한 업적이라면, 우리 국민들에게 이런 사실을 절실하게 가르쳐준 것이 아닐까 싶다.
(오마이이슈를 담당하던 김소희 기자가, 4주간 ‘조정기간’이 필요한 사유가 생겨 칼럼을 쉽니다. <한겨레21>의 정치팀장인 이태희 기자가 공백을 대신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