뭘 바라겠는가. 고작 이탈리아 억양을 쓰는 나쁜 놈이다. <나니아 연대기: 캐스피언 왕자>의 미라즈 왕은 권력에 눈멀어 젊은 조카를 살해하란 명령도 서슴지 않는다. 영화상 유머러스한 장면조차 허락되지 않은 심각한 1차원적 악당. C. S. 루이스의 원작은 미라즈 왕이 이탈리아 핏줄이란 얘길 어디에도 써놓지 않았건만 할리우드 제작자들은 나니아 땅에 군림하는 폭군 미라즈 왕과 그의 이기적인 영주들을 모두 남유럽 계열로 바꿔놓았다. 이탈리아의 국민배우이자 감독, 올해 칸영화제 심사위원으로도 초청된 세르지오 카스텔리토는 이렇게 고작, 할리우드영화에서 낯선 억양을 쓰는 악당일 뿐이다.
1953년 로마 출생인 세르지오 카스텔리토는 연극무대에서 희극배우로 명성을 먼저 쌓았다. 실비오 다미에오 국립연극예술학교를 졸업하고 이탈리아 정통 희극 무대에서 두각을 보였던 그는 스물아홉살, 이탈리아의 대배우 마르첼로 마스트로얀니 곁에서 연기하며 영화계 데뷔를 치렀고 20대 때 이미 연극 제작에 뛰어들었던 창작력과 적극성으로 영화 시나리오도 곧 쓰기 시작했다. 연극무대에서의 명성을 이어 자국 내 여러 뛰어난 코미디 장르 감독들과 작업했고 프랑스나 독일 등 이웃나라 영화에도 적극 출연했으며 이탈리아 유수 연기상들을 휩쓸었고 주세페 토르나토레의 <스타메이커>(1995)로 배우로서 최전성기에 올랐을 때 감독으로 데뷔했다. 1998년 데뷔작 <리베로 부로>는 코미디물이었다.
2004년 그의 두 번째 연출작 <빨간 구두>는 페넬로페 크루즈 주연의 불륜 섞인 멜로드라마다. 책임과 열정 사이에서 갈등하다 깊은 좌절을 맞는 남자의 격정적인 이 이야기는 베스트셀러 소설가인 그의 아내 마거릿 마잔티니의 책을 영화화한 것. 황폐한 삶의 골을 표현해내는 연기력의 무게와 두편의 영화로 인정받은 연출력까지, 카스텔리토는 고작 이탈리아 억양을 쓰는 나쁜 놈으로 각인되고 끝날 만한 배우가 아니다. 세상은 넓고, 위대한 국민배우들은 많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