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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장 35인이 연출한 <그들 각자의 영화관> 속 영화관 투어 [1]
정재혁 2008-05-20

안드레이 콘찰로프스키의 영화관 <어둠 속의 그들> Dans le Noir

펠리니와 코카콜라. 안드레이 콘찰로프스키의 영화관은 고전과 오락의 어울리지 않는 동석이다. ‘15분 뒤에 돌아오겠습니다’란 메시지를 남기고 극장에 앉아 영화를 보던 매표소의 여직원은 눈물을 훔치지만, 저 뒤의 좌석에선 남녀가 서로의 몸을 탐하며 신음한다. 남녀의 동작은 점점 더 거칠어지고 여직원은 배려인지 포기인지 ‘매진’이란 푯말을 매표소 앞에 내건다. 매표소에 가기 전 그녀는 좌석 옆에 버려진 펩시콜라 병과 팝콘 박스도 주워 쓰레기통에 버렸다. 무언가 정치적인 걸까 싶다가도 유하고 넓은 시선으로 극장을 따뜻하게 감싼다. 코카콜라와 펠리니? 좀 안 어울리면 어떤가. 그게 극장의 낭만인걸.

기타노 다케시의 영화관 <어느 좋은 날> 素晴らしい休み

삼거리 한복판에 위치한 히카리 극장. 한 남자가 농부표를 끊고 극장에 들어간다. 허름한 극장 내부엔 동네 개가 어슬렁거리고 영사기 아저씨는 “시작합니다”라 외친 뒤 영화를 튼다. 얼굴이 익숙한 남자, 기타노 다케시다. 이곳엔 다케시가 3명 있다. 자신의 6편째 영화 <키즈 리턴>을 트는 극중 비트 다케시(배우로 활동할 때 기타노 다케시는 비트 다케시란 이름을 쓴다), 배우가 연기하는 농부 모습의 다케시(이 남자는 아무리 봐도 기타노의 자전적인 캐릭터다), <어느 멋진 날>을 찍은 스크린 너머의 다케시. 기타노 다케시는 마치 자신의 옛 영화를 방문하듯 극장에 들르고, 그곳에서 다시 한번 <키즈 리턴>의 명대사를 듣는다. 어린 시절 마음을 울렸던 그 한마디. “우린 이제 끝난 걸까?” “아니, 아직 시작도 안 했잖아.” 작고 귀여운, 하지만 따뜻한 자위의 극장.

마뇰 드 올리베이라의 영화관 <독특한 만남> Sole Meeting

한 남자가 영화를 틀면 정치와 종교의 기묘한 만남이 이뤄진다. 후루시초프와 교황 23세가 어느 자리에서 서로를 알아본다. 교황을 동무라 칭하며, 교황이 기도하자고 하면 모두 복종하듯 기도한다고 말하는 후루시초프. 종교를 해석하는 독재자의 시선이 우습지만 재치있다. 교황은 후루시초프에게 다가와 우리에게도 공통점이 있다며 서로의 불쑥 나온 배를 가리킨다. 정말 영화에서나 가능할 법한 만남이 이념과 종교의 두꺼운 벽을 간질인다.

장이모의 영화관 <영화 보는 날> Movie Night

장이모의 영화관엔 영화가 돌아가지 않는다. 주인공 꼬마 남자는 막상 영화가 시작되자 잠이 든다. 기대, 꿈으로만 갖게 된 영화 보기. 중국 시골마을의 영화관엔 스크린 속 모험 대신 설렘이 가득이다. 마을에 들어온 영사기를 보며 뛰어노는 아이들. 동심이 피어난 그곳은 영화가 없어도 어느 극장보다 활기차다. 최근 장이모가 만든 다른 어떤 영화보다 사랑스럽고 따뜻한 느낌. 가공되지 않은 향수가 있어 좋다.

월터 살레스의 영화관 <칸으로부터 5,557마일 떨어진 마을> A 8,944km de Cannes

칸에서 8,944km 떨어진 브라질의 한 마을 미구엘 페레이라. 극장엔 프랑수아 트뤼포 감독의 <400번의 구타>가 걸려 있고, 그 앞의 두 남자가 이야기를 주고받는다. 극장의 크기를 축구장에 비유할 줄밖에 모르는 두 남자지만 비트를 타며 쉴틈없이 주고받는 말에는 자신이 있다. 한 남자는 영화 좀 안다고 잘난척하고 다른 남자는 무식함을 그대로 드러내며 그래도 꿀릴 것 없다고 받아친다. 작은 드럼을 치며 리듬을 점점 빨리하는 둘. 33편의 영화 중 극장 안에도 들어가지 않는 유일한 작품이지만 가장 신난다.

빔 벤더스의 영화관 <평화 속 전쟁> War in Peace

콩고강 근처의 카발로 마을. 100년의 식민지, 30년의 군사독재, 10년의 시민전쟁을 거친 이 마을에 작은 영화관이 있다. 돌로 담을 쌓고 지푸라기로 지붕을 덮었으며 작은 흑판에 상영시간을 적어놓은 곳. 빔 벤더슨은 처음으로 평화를 맞는 카발로 마을의 극장을 찾아갔다. 노을이 지는 하늘과 뛰어노는 아이들이 있는 이 마을에서 전쟁은 아슬아슬하게 상영 중인 영화 속에 남아 있다. 영화관 밖으로 새어나오는 총성 소리와 뇌리에서 쉽게 떠나가지 않는 전쟁의 모습을 스크린으로 마주하고 있는 아이들의 표정은 조심스레 평화를 맞는 마을의 떨리는 심정을 전한다. 현실을 떠나보내는 장소로서의 영화관. 카발로의 하늘이 맑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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