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르만화의 경계가 무너지고 있는 가운데 순정만화만이 고유의 정체성을 고수하고 있는 유일한 장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 장르 속에서는 끊임없는 세포분열이 진행되고 있어 마치 3세계 영화를 보는 듯한 즐거움을 주는 순정만화가 등장하곤 한다. 일본 순정만화계의 신성, 오노 나쓰메의 <리스토란테 파라디조>가 바로 그런 작품. 오노 나쓰메는 이탈리아에서 유학을 한 만화계에선 독특한 이력의 작가로 주로 유럽을 배경으로 한 작품을 그리고 있다. <리스토란테 파라디조> 역시 이탈리아의 한 레스토랑을 배경으로 50줄에 접어든 중년 남성과 그들을 사랑하는 중년 여성들과 한 풋내기 아가씨의 로맨스를 담고 있는 만화다. 중년들이지만 레스토랑 ‘카제타 델로루소’에서 일하는 이들은 사장부터 종업원까지 하나같이 늘씬하고 탄탄하다. 게다가 어찌나 사려깊은지 막 사랑을 시작한 여주인공 니콜레타의 연모의 대상이요, 성장통을 풀어주는 훌륭한 상담사 역할까지 한다. 여느 순정만화에서라면 테리우스로 상징되는 꽃미남 오빠께서 하셔야 할 역할을 아버지뻘인 ‘꽃중년’들께서 해주신 것. 그러나 그들은 결코 느끼하거나 부담스럽지 않다. 얼굴만 번지르르한 풋내기들과는 비교할 수 없는 중후한 매력이 어찌나 강렬한지 이 만화의 출간 이후 일본에서 ‘신사 모에’(일본어로 심취) 열풍이 불고 있다고. 틀에 박힌 순정만화에 식상해 있는 독자라면 오노 나쓰메의 이름을 꼭 기억하도록 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