확실히, 김중혁은 수집가다. <펭귄뉴스>를 통해 라디오, 타자기, 자전거 등 시대의 조류에 반걸음 뒤처진 사물들을 불러모았던 그가 이번에는 다양한 소리들을 채집했다. “음악을 몸으로 소멸시키는 것”이 자신의 사명이라고 믿는 영화음악가, 정체를 파악하기 힘든 열정으로 수백 가지의 악기 소리를 녹음하기 시작하는 남자, 엇박자를 성대에 새기고 태어난 듯 늘 합창을 망가뜨리고 마는 소년 등 <악기들의 도서관>은 피아노와 오르골, 턴테이블과 전자기타, 인간의 음성이 맞물리며 유려하게 이야기를 연주한다. 책장을 넘길 때마다, 금세라도 음악이 들려올 것처럼. 이른바 “0.5cm SF”인 김중혁 특유의 화법은 여전하면서도 좀더 풍성해졌다. 나이와 국적이 다른 두 피아니스트는 수화기를 통해 피아노 연주를 들려주며 묘한 우정을 쌓고, 지하철에서 엉킨 실을 풀던 백수 청년들은 대중의 호기심을 얻고 졸지에 예술가의 자리에 등극한다. 경쾌하면서도 알싸한, 가벼우면서도 뻐근한 8편의 이야기들은 엇박자로 비껴가고 합쳐지면서 하나의 새롭고 독특한 음악을 완성한다. <악기들의 도서관>은 자신의 취향을 이미지, 소리, 이야기로 리믹스하는 DJ 김중혁이 선사하는 흥미로운 “녹음테이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