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합선물세트지수 ★★★★ 영화별 편차지수 ★★★★ 이름값 충족 지수 ★★★
“작게도 못하면서 왜 크게 하려고 하는지 그는 이해할 수 없었다.” 영화는 짐 해리슨의 말을 인용한 프롤로그로 시작한다. 들판 위에 작은 스크린이 하나 세워져 있고 두 남녀가 그 앞의 의자에 앉아 있다. 칸국제영화제가 60주년을 기념해 만든 옴니버스영화 <그들 각자의 영화관>은 정말 작은 영화 33편을 모아놓은 작품이다. 35명의 감독(코언 형제와 다르덴 형제가 포함되어 있다)이 3분 남짓의 길이로 각각 한편씩 영화를 만들었고 그렇게 만들어진 영화가 <그들 각자의 영화관>이란 이름으로 묶였다. 영화의 부제인 ‘불이 꺼지고 영화가 시작될 때의 전율’에서 알 수 있듯 33편의 영화는 모두 영화관 혹은 영화를 보는 것에 대한 이야기를 담고 있다.
로만 폴란스키, 켄 로치, 라스 폰 트리에, 마뇰 드 올리베이라, 엘리아 슐레이만, 빔 벤더스, 아톰 에고이얀, 올리비에 아사야스 등. 세계적인 거장들이 영화관이란 본질적인 질문에 보여준 답변들은 정말 다양하다. 33편 중 가장 으뜸이라 할 만한 데이비드 크로넨버그의 <세계 최후의 영화 속 세계 최후의 유대인이 자살하는 곳에서>는 미디어와 영화, 인종의 문제를 극한의 형식으로 던지고, 아톰 에고이얀의 <아르토 동시상영>은 서로 다른 곳에서 영화를 보며 휴대폰 메시지를 보내는 사람을 통해 영화 속 픽션과 실재, 휴대폰 속 세계와 현실의 문제를 마술처럼 엮어낸다. 알레한드로 곤잘레스 이냐리투(<안나>)와 첸카이거(<짱슈 마을>)는 장님을 주인공으로 하여 영화가 시각적인 경험만은 아님을 은유하며, 구스 반 산트(<첫 키스>), 마이클 치미노(<통역할 필요 없음>), 테오 앙겔로풀로스(<3분>)는 영화와 현실의 경계를 지운다. 유일하게 다큐멘터리를 찍은 빔 벤더스(<평화 속의 전쟁>)는 콩고강 근처의 한 마을을 찾아가 영화 속에 남은 현실의 상처를 담았다.
<그들 각자의 영화관>은 최근 만들어진 옴니버스영화 중 가장 좋은 모양새를 보여준다. 다소 애매한 주제와 그에 걸맞지 않은 영화들의 결합으로 영화 전체에 대한 판단을 유보하게 했던 다른 옴니버스 프로젝트와 달리 <그들 각자의 영화관>은 적절한 기획 의도로 진정한 옴니버스영화를 보는 재미를 준다. 영화의 시작점 자체가 ‘영화 보기’에 대한 거장들의 생각을 탐구하는 것이었기 때문에 엔딩 크레딧조차 확인하는 의미가 있다. 또 대다수의 경우 영화가 끝난 뒤 감독의 이름을 보여준다. 이름값을 못하는 작품도 몇편 있지만 앞뒤로 포진된 훌륭한 작품 덕에 실망도 덜하다.
TIP/국내에서 개봉하는 버전은 칸영화제에서 상영됐던 것에서 두편이 빠져 있다. 코언 형제의 <월드 시네마>와 마이클 치미노 감독의 <통역할 필요 없음>이 그 두편. 이는 두 감독이 자신의 영화를 상업적인 목적으로는 상영하고 싶지 않다고 밝혔기 때문이다. 그래서 다른 나라에서도 개봉용 버전에는 두편이 빠져 있다.